지난해말 미술관 관람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미술평론가 윤범모가 북한의 대표적 전시관인 조선미술박물관 근대미술실을 둘러 보고 깜짝 놀라 최근 밝힌 사실이다.
그는 “이상범 김기창 등의 30,40년대 작품이 많았다. 일부는 모작임을 확인했지만 대부분 진품으로 추정된다. 특히 생존해 있는 남한 작가 중에서는 김기창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었다”고 놀라워 했다.
북한은 뼈대를 그리지 않고 곧바로 몸체를 그리는 몰골화법과 채색화를 높이 평가한다. 김기창의 작품은 주로 채색화이면서 서양화풍이 적어 높이 평가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월북작가들의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도 큰 특징. 이쾌대 길진섭 김만형 최재덕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월북했지만 이들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
윤씨는 “월북화가들 대부분은 북의 주체사상에 적응하지 못해 점차 도태됐다”고 말했다.
조선미술박물관은 1만2천평의 부지에 21개의 진열실을 갖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2만2천여평, 9개 전시장)에 못잖은 규모다. 이 중 근대미술실은 조선후기인 19세기 후반부터 40년대까지의 작품을 전시중. 장승업 김은호 노수현 김용진 이상범 등 전통기법으로 채색화를 그린 한국 대표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작품들은 ‘계급의식’과 ‘주체사상’의 기준에서 선별된 듯한 인상. 조선후기 작품 중 문인화는 배제됐다. 선비들이 그린 문인화는 지배계급인 양반 문화의 잔재여서 배척하고 있다는 것. 또한 유화작품도 완전히 배제됐다. 이는 서양제국주의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란 설명.
또 다른 특징은 모사품이 많다는 점. 북한은 남한과 달리 모사품을 경원시하지 않는다. 진품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옛그림은 물론 현대화도 모사하고 있다. 모사전문 화가들도 양성중이다. 윤교수는 “문화교류가 본격화되면 모사품으로 인한 진위 논쟁 등 각종 문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