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일제히 ‘동책(洞責)’으로 임명돼 재 보선에 투입되는 바람에 내팽개쳐진 제202회 임시국회는 폐회일(8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고작 ‘하는 일’이 있다면 여야의 거짓말 공방뿐이다.
1일 오전8시 열릴 예정이던 여야 수석부총무회담이 무산되자 한나라당은 자민련 이양희(李良熙)수석부총무가 중국여행을 가는 바람에 취소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회의 장영달(張永達)수석부총무는 “어제 저녁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수석부총무가 ‘내일 당지도부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며 미루자고 했다”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사 이런 식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날 양당 총무회담을 열어 추경예산안, 정부조직개편안,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등 현안을 회기 내에 처리키로 했다. 이에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힘으로 하겠다면 하라고 해”라며 ‘장외투쟁 불사’를 외쳤다. 여야간 ‘의미있는 대화채널’조차 없어 이 상태로라면 서로 막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여권은 현재의 ‘국회부재(不在)’를 한나라당의 ‘서상목 보호작전’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사실 서의원 문제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에서도 비판론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비주류의 한 중진의원은 “이게 국회냐. 서의원 한명 때문에 나머지 2백98명이 이리저리 끌려다녀서야 되겠느냐. 이회창(李會昌)총재도 문제다. 서의원을 설득하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선에서 책임을 져야지 왜 당과 국회가 욕먹게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에 대한 내부비판은 점점 거세진다.
국민회의도 비슷하다. 한나라당의 ‘서상목 방탄국회’만 부각시키려 들 뿐 당지도부가 국회정상화와 민생을 위해 노력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야당과의 ‘물밑대화’조차 없다. 총무간 대화채널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재 상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총재는 지난달 17일 ‘미래지향적 국정운영을 위한 여야 파트너십’을 약속한 합의문까지 발표했지만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총재회담 따로 당론 따로다.
김대통령은 총재회담 직후 “대야(對野) 관계 등 정치를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했지만 문제를 풀기 위해 여권 지도부를 독려하고 있다는 얘기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여야간에는 그저 “모두가 남의 탓”이라는 소모적 헐뜯기만 난무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민생은 실종되고 국민만 괴롭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