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불법선거실상]사랑방좌담회…官權개입 의혹

  • 입력 1999년 4월 5일 19시 17분


《일파만파(一波萬波). ‘3·30’ 재 보선 불법타락 공방의 파고(波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선거는 이기면 그만’이라는 왜곡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 듯, 여권의 타락선거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집권당 내부에서 타락선거 자성론이 나온 것도 선거사상 거의 유례가 없는 일. 여당지도부는 “불법타락은 없었다”고 강변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3·30’ 재 보선 문제가 정리되지 않을 경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까지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재 보선에서 무너진 선거관리위원회의 전통을 다시 세우겠다”고 의욕을 보였던 선관위마저 ‘편파관리’시비에 시달리는 상황.

여기다 서상목(徐相穆)의원 문제까지 겹쳐 정치판은 갈피를 잡기 힘든 혼미(昏迷)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이다.》

‘3·30’ 재 보선의 특징 중 하나는 각당 후보가 늦게 결정되거나 막판에 교체되는 등 진용구축이 지연되는 바람에 지난해 ‘7·21’ 재 보선 못지않은 과열 혼탁상이 초래됐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이 여당후보 감시운동에 당력을 쏟는 ‘네거티브 전술’로 근접전을 벌인 것도 선거 분위기를 뜨겁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24일 모선거구. 선거사상 전례가 없는 선관위의 ‘여당후보 선거사무실 급습’이 결행됐다. 후보측이 사흘째 부녀자 노인 등 1백∼2백명을 하루에 서너차례씩 불러모아 특위위원 위촉 명목의 ‘편법집회’를 열고 있던 현장이었다.

선관위 직원 7명은 집회 현장 바로 옆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으나 곧바로 선거운동원들에게 들켜 저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선관위는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참석자들을 추적해 금품수수와 비당원 참석사실을 일부 확인했지만 집회중단 지시 외에는 뚜렷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야측에 공세의 구실을 줬다.

한나라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당측의 불법선거 폭로에 주력했다. 이 선거구의 한나라당후보측 선거운동원은 집회현장에 잠입해 1만원씩 받았다는 부녀자 4명에게 다가가 “2만원씩 줄테니 돈을 받은 사실을 폭로해 달라”고 제의했다는 게 선거실무자의 고백.

선거법으로 금지된 당원모집 대신 특위위원 위촉 형식의 이러한 ‘유권자모집’은 역대 대선 때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 전통 선거운동 방식. 그러던 것이 이번 재 보선에까지 도입된 것이다.

불법선거운동의 대표격인 사랑방좌담회도 이번 선거부정의 ‘단골메뉴’. 좌담회 개최장소 제공 및 유권자 집결, 음식준비 등에 수십만원 이상이 오간다는 게 선거관계자들의 얘기. 시흥에서는 한나라당이 자민련의 사랑방좌담회 개최장소를 미리 입수하고 선관위직원들과 함께 아파트현장을 덮쳤으나 아파트문을 열어주지 않는 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들은 20여분 뒤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증거로 보일 만한 것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안양시 동안구선관위에 의해 압수된 국민회의의 사랑방좌담회 명단도 국민회의가 처음에는 “전화홍보용 명단”이라고 둘러댔지만 선거실무자는 나중에 사실을 시인했다. 사랑방좌담회에 익숙한 한나라당후보 진영도 “여야가 서로 용인하자”고 중앙당에 건의했다가 자금부족으로 포기할 정도로 선거범죄에 대한 죄의식은 거의 희박한 실정이다.

지역민원이 산적한 안양에서는 관권선거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여당의 한 중진인사는 안양시 석수동 주민들이 한국전력의 변전소 건설계획 취소를 줄기차게 요구하자 막후에서 힘을 발휘해 이를 취소토록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3·30’ 재 보선은 전형적인 유세장 청중동원뿐만 아니라 편법유권자모집 불법유권자집회 관권선거의혹 등 각종 탈법 불법 선거운동 방식이 거의 빠짐없이 동원된 혼탁선거의 ‘전시장’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원재기자〉w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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