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부정선거 수사지시]「與 부정단서」손에 쥔듯

  • 입력 1999년 4월 6일 19시 43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6일 ‘3·30’재 보선의 부정시비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지시해 부정선거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대통령의 지시가 주목되는 이유는 부정시비 공방의 향배뿐만 아니라 당선무효 등 선거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김대통령의 지시 배경은 사태추이를 가늠할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즉 불법에 대한 모종의 단서를 확보한 상태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단순하게 당위론적인 차원에서 정치권의 논란을 진화시키려는 것인지를 가려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김대통령의 이날 발언 강도가 상당히 높았다는 점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여당후보가 이기면 적당히 넘어간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여당이 이겼으니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은 언뜻 여당 당선자들을 겨냥한 뉘앙스마저 풍긴다.

지시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선거전이 한창일 때 대통령에게 지난해 ‘7·21’재 보선때보다 혼탁하고 고발대상도 여당후보가 많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후보비방 등의 혐의가 입증된다면 처벌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수사대상에 ‘중대혐의’도 포함돼 있음을 시사했다.

이렇듯 청와대는 김대통령의 지시가 뭔가 결실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곧바로 부정선거 규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권선거가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진 지난해 ‘7·21’재 보선때도 김대통령은 “흑색선전이 여전하고 일부 금력이 동원됐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유야무야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결과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었다.

그래서 정치권 주변에선 “역설적으로 김대통령이 ‘혐의없음’이 확인되자 철저수사를 강조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아무튼 김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재 보선 부정 시비가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모아져 정치권의 공방은 당분간 소강상태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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