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정전체제 이후 80년대까지 줄기차게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던 북한이 90년대 초 ‘단계적 철수’라는 변화과정을 거쳐 지난해 부터 ‘지위변경’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주한미군의 지위변경 문제를 언급한 것은 사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해 3월 4자회담 제2차 본회담에서도 북한은 주한미군의 지위변경 문제를 의제로 채택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러시아를 방문하고 귀국한 임동원(林東源)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주한미군 지위변경 문제를 공식 언급한 것은 뭔가 진전이 있었다는 시사로 받아들일 만하다.
즉 임수석이 러시아 방문기간 중 북한측 의사를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이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김대통령은 북한의 입장변화를 ‘햇볕정책에 대한 호응’이라고까지 평가했다.
북한측이 말하는 주한미군의 지위변경이란 남과 북의 중간적 위치에 서는 평화유지군(PKF)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이 평화유지군이 되려면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
또 정전협정 체결당사자인 유엔군사령부의 실질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PKF로의 지위변경은 유엔사의 해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측 제의에 대한 청와대나 외교통상부의 대응은 다소 혼란스럽다.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부장관은 “국군과 북한인민군 등 한반도의 모든 군대를 논의대상으로 한다면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7일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이 문제를 검토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관한 김대통령과 청와대측의 공식적인 언급에 대해서도 외교통상부측은 곤혹스러운 입장을 보인다. 아직 정부 내의 입장조율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