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KAL 경영권과 대통령의 말

  • 입력 1999년 4월 21일 19시 24분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대한항공(KAL)의 잇따른 사고와 관련, “근본적으로 전문경영인이 나서서 인명을 중시하는 경영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지금의 조중훈(趙重勳)회장―조양호(趙亮鎬)사장의 친족체제로는 안되겠다는 강한 불신감의 표현이었다. 대통령의 이런 지적이 있자 정부는 바로 대한항공측에 경영진 교체를 포함한 획기적 구조개혁안을 제출하라고 다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변해야 하고, 개혁을 위해 필요하다면 경영진 교체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실제로 현 부자(父子) 체제의 대한항공은 그동안 권위주의적 독단경영으로 회사 내부에서조차 강한 불만이 누적되어왔다. 일방통행식으로 명령이 하달되는 관료주의적 조직과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수준, 과중한 업무로 직원들은 불만이 목에 찼는데도 회사 경영층은 문책이나 하고 밑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조차 않았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항공기의 절대요건인 안전이 지켜질 리 없고 그 결과는 최근의 중국 상하이 화물기 사고 등 98년 이후 불과 1년 4개월 동안에 일어난 12건의 사고가 입증한다. 더구나 대한항공은 김대통령도 지적했듯이 비록 사기업이라고는 하나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등 공기업 이상의 책무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데도 전근대적 경영으로 인해 사고를 잇따라 내고, 나라의 대외 신인도마저 땅에 떨어뜨린다면 경영체제를 바꿔서라도 더 이상의 사고나 손실을 막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김대통령이 대한항공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고대책에 관해 언급한 것은 마땅하다고 본다. 문제는 김대통령이 직접 일개 사기업의 ‘경영권문제’까지 직접 거론한 점이다. 대통령‘말씀’의 진의(眞意)와 충정을 십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김대통령의 말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주가 아닌 정부가 사기업의 경영권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초법적인 발상’이 아니냐는 재계의 비판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안될 것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우리의 현실적 권력풍토에서 대통령의 이같은 말이 어떤 예상치 못한 파장과 부작용을 몰고 올지 걱정스럽다.

김대통령은 대한항공 경영진에 대한 교체 요구에 앞서 항공 주무부서인 건설교통부 등을 통해 적법한 과정을 밟아 대한항공의 개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사기업의 경영권이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비친다면 이 또한 나라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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