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석 발언의 요지는 ‘지역분할구도를 깨고 불신 받는 정치구조를 혁파하기 위해선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한 큰 틀의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 또 정계개편 시기는 내년 4월 16대 총선 전후나 내각제 논의 매듭 시점이 적당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자민련 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가 기다렸다는 듯이 23일 “김수석의 발언은 내각제 개헌을 피하려는 저의를 깔고 있다”고 맞받았다. 내각제를 하면 정책과 이념이 같은 정당끼리 연합해 자연히 정계개편도 가능하고 지역구도도 타파되는데 이를 외면한 채 단순히 정계개편만을 말하는 것은 내각제를 안하겠다는 뜻이라는 논리였다.
김부총재는 특히 “현재의 대통령제 체제를 놔두려고 하다보니 자기 모순에 빠진 것”이라며 “내각제 논의를 유보하기로 했으면 내각제와 직 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얘기는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제는 합당 얘기를 했다가 언제는 TK신당, PK개혁연합하더니 이제는 정계개편이냐. 정말 딱하고 불쾌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부총재는 내친 김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연합공천 발언까지 시비를 걸었다. 그는 “연합공천은 상호신뢰의 토대 위에 이뤄지는 것으로 이를 위해선 내각제 약속이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면서 “내각제가 안되면 내년 4월 16대 총선을 어떻게 치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동안 내각제 언급을 자제하다 모처럼 발언 기회를 잡아서 그런지 이날 김부총재의 목소리에는 유난히 힘이 실렸다. “야당과 내각제 협의를 하겠다”는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22일 국회 답변에 대해선 “한나라당에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부연 설명했다.
김수석 발언이 내각제 공방으로 번지자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국민회의 정균환(鄭均桓)사무총장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김수석의 개인 의견에 불과하며 여권은 그런 정계개편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무마했다.
김대통령도 김수석을 질책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김수석 발언에는 김대통령의 희망과 구상이 담겨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편 한나라당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정무수석이 ‘정계대통합’발언을 하자 국무총리가 ‘정계대연합’발언으로 응대하는 등 여권의 ‘내각제 싸움 공해’에 국민만 멍들고 있다”고 비아냥댔다.
〈송인수·이원재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