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은 25일 당사 기자실로 찾아와 “대통령의 독재가 심각해 입법부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내각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며 전날의 ‘내각제 검토 용의’ 발언을 해명했다.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이날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우리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사실 신총장 발언은 그동안 이총재가 발언해온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장이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진 것은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22일 국회 발언(“내각제 개헌 문제가 본격화되면 야당과도 협의하겠다”)과 자민련 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의 23일 발언(“야당에도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다수 있다”)에 뒤이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총재와 신총장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적극 진화에 나선 것을 보면 ‘공동여당 틈새벌리기’ 차원의 노림수였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신총장 발언에 대한 청와대의 ‘무대응’, 국민회의의 ‘비난’, 자민련의 ‘환영’ 등 여권의 삼색(三色)반응에서도 이런 해석은 확인된다.
하지만 이총재 진영의 최근 기류로 볼 때 신총장 발언이 단순히 ‘애드벌룬 띄우기’차원의 일과성(一過性)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이총재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민련이 정말로 내각제를 관철할 뜻이 있다면 야당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핵심측근은 “한나라당 정강정책에 있는 ‘대통령제 유지’는 삭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이총재의 측근 중에서는 “내각제 논의를 8월까지 유보키로 한 DJP 합의에 따라 권력구조 당론을 정하다 보면 언제 ‘제2의 창당’작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총재측이 권력구조 공론화 작업을 앞당길 경우 한나라당 내부는 물론 정치권은 회오리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내각제 문제의 ‘인화성(引火性)’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논의를 중단시킨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총리의 합의는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