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는 40여분간의 모두발언 대부분을 재임중 치적을 열거하는데 할애할 정도였다.
특히 YS는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면서 군데군데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정권의 탄생도 내 치적 덕분”이라는 식의 논리를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모두발언 중 자신의 치적에 대한 자평 부분.
“일본친구들이 재임중 개혁조치에 대해 얘기들을 많이 한다. 하나회를 청산하지 않았으면 민주주의가 안 됐을 것이다. 하나회가 전부를 좌우했다. 여야의원들이 술집에서 두들겨 맞지 않았느냐. 그들은 다음 참모총장도 자기들끼리 정해놓는다. 하나회를 정리하지 않았으면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며 계속 후진국으로 남아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것이다.
취임해보니 안가가 9개나 있었다. 굉장히 화려한 곳으로 여자들과 밤마다 술을 먹는 곳이다. 그래서 전부 뜯어서 무궁화동산으로 만들어 서울시에 기증했다.
그대로 있었다면 계속 그 짓을 했을 것이다. 뭇 여자들과 술 먹고…. 어떤 여자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재산공개조치를 무서울 만큼 했다. 목 날아간 공직자가 얼마나 많으냐. 지금 그런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개가 웃을 일이다.
임기중 금융실명제를 한 것만 해도 위대한 일이다. 그것을 안하면 경제정의가 되지 않는다. 부익부 빈익빈이 얼마나 심하냐. 재산을 감출 수 있으면 분배가 공정하게 안된다. 부정부패도 색출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은 유명무실해졌다. 자기들과 관계가 있어 그렇게 한 것이다. 국민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자기들 돈을 감추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부동산 실명제를 도입해 물가를 많이 단속한 것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선거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공명선거를 위해 큰 사명감을 갖고 있었으며 그래서 고건(高建)총리에게 ‘그것만 잘하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공명선거가 됐다. 15만표만 덜 나왔어도 김대중씨는 안 되는 것 아니냐. 나는 임기중 누구로부터도 돈을 받지 않았고 주지도 않았다. 야당총재를 20년간 하면서 혼자 당을 끌고 가야되는데 그 때는 돈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
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것도 간단치 않았다. 재야에서도 조직을 만들어 반대했다. 일본관광객이 와서 우리를 지배한 권부인 총독부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갔다. 지금은 광화문에 없으니 북한산과 청와대가 다 보이고 얼마나 좋으냐. 대단한 용단을 내리지 않으면 못한다. 역사정의를 위해 뜯은 것이다.
역사바로 세우기는 정말 용단이었다. 12·12와 군사쿠데타 세력을 단죄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국민혁명으로 승화시켰다. 광주묘지를 확장시킨 것도 내가 했다.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 때까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억제했다.”
〈도쿄〓이원재기자〉w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