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기자간담회]IMF관련부분 발언 내용

  • 입력 1999년 6월 7일 19시 49분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7일 도쿄 기자간담회에서 퇴임 후 자신에게 쏟아졌던 “나라 망친 대통령”이라는 비난에 대해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며 반박했다.

이날 김전대통령은 모두발언과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나도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다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다음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와 관련한 김전대통령의 이날 발언 내용.

“나도 금융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고 잘 파악하고 있었다. IMF행을 빨리 안하고는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관리들 중 잘돼간다고 보고하는 관리도 있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경제가 나빠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동법을 개정하라고 당에 시켰으나 무리수를 둬 취소됐다. 그 때 필사적으로 반대한 사람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다.김대통령 당선 후 우리 안대로 만장일치로 처리됐다. 한국은행법도 금융관계 해결을 위해 꼭 해야 했으나 한은 직원들이 데모를 하고 김대중씨도 반대해 끝내 못했다. 당선된 뒤 우리 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기아자동차가 결정적 문제였다. 경제원리에 의해 처리하려 했으나 김대중씨가 국민기업은 살려야 한다며 처리를 못하게 방해했다.

노동법과 한은법개정 기아자동차만 없었으면 그렇게 급하게 IMF로 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씨가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기아사태는 경제원리에 의해 처리하려 했다. 취임 후 10조원이 넘는 부채를 국민에게 떠넘겼으나 그 당시 김대중씨가 국민기업은 살려야 한다며 처리를 못하게 방해했다. 자기가 당선돼서 한 일을 우리가 하려 했다.

클린턴 미국대통령에게 밤중에 전화를 해 ‘대단히 어렵다. 도와달라’고 급하게 얘기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때 만나 얘기하기로 했다. 그 때 사실 일본의 돈이 확 나가버렸다. 일본도 어려워 차관이 급속히 빠져나간 것이다. 그 뒤 미국과 유럽 돈도 빠지게 된 것이다. APEC에서 미국 일본 두 정상과 만나 외환위기만 얘기했다. 클린턴은 ‘IMF로 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나도 ‘간다. 다만 관리들 얘기가 20일 정도 걸린다고 말해 이 기간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 급한 대로 일본으로부터 돈을 빌리려 한다’고 말했다.

하시모토일본총리를 만나 돈을 빌려달라고 말했고 하시모토도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귀국해서 전화하니 하시모토가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며 말이 달라졌다. 클린턴과 하시모토가 말을 맞춘 듯했다. 그래서 빨리 하라고 촉구했고 하시모토에게 IMF 유럽이사국들을 책임져 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노력했지만 하시모토도 애를 썼다. 그 후 클린턴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빨리 IMF로 가야 한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재차 얘기했다. 클린턴에게 ‘당신이 위에서 다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래서 일이 동시에 이뤄져 4,5일만에 IMF로부터 결정이 나왔다.

내가 위기를 느낀 것은 노동법개정 때부터였다. 기아사태가 이를 가속화시켰다. 이 때 외국으로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강경식(姜慶植·전경제부총리)과 김인호(金仁浩·전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가 IMF문제를 미리 얘기했으나 극비로 하기로 해 윤진식(尹鎭植·전대통령경제비서관)한테 비밀로 한 것이다. 11월초 윤비서관에게 보고받고 알았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나는 경제의 큰 원칙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 자동차생산은 2백만대인데 수요가 1백10만대로 90만대는 안 팔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이 자동차를 하겠다고 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자료를) 매일 보는데 왜 모르겠느냐. 경제와 북한과 치안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우리 관리들 중에도 IMF로 가야 한다고 얘기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내가 먼저 ‘가야 한다’고 하자 문민대통령으로서 명색이 서지 않는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명색은 무슨 명색이냐’며 내가 결정했다.

임창열(林昌烈·전경제부총리·현 경기도지사)에 대한 문제는 상식에 맡기겠다. 대통령까지 지낸 내가 임창열이 같은, 데리고 있던 아랫사람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겠느냐. 계속 거짓말을 잔뜩 하게 내버려 둬라. 내 지시에 의해 강경식이 결정한 것이다. 캉드쉬도 내가 비밀리에 오도록 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정책결정을 가지고 재판을 한 데가 있느냐. 그렇다면 김대중씨도 감옥에 가야 한다. 강경식과 김인호에 대한 재판은 나에 대한 정치보복이다.”

〈도쿄〓이원재기자〉w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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