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이 국조권을 수용키로 한 것은 파업유도 의혹 확산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자칫 정권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시시각각 청와대 기류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김대통령은 전날까지만 해도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을 경질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노동계의 전면적인 반발과 야당의 공세강화 등 상황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여론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정권의 정통성과 도덕성 수호 차원에서 단안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현재 청와대는 여전히 진형구(秦炯九)전대검공안부장의 발언이 ‘취중실언’이라는 검찰의 자체조사 결과를 믿는 분위기다. 그러나 설령 진전부장의 발언이 사실로 드러난다해도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구태(舊態)청산’과 ‘개혁가속화’의 계기로 삼을 생각이라는 게 참모들의 얘기다.
즉,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고 있는 정부조직 내의 기득권층과 반개혁세력을 견제하고 특히 검찰개혁에 본격 착수하는 계기로 이번 사태를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아무튼 여권의 국정조사 수용 결정으로 일단 정국정상화의 단초는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정조사의 범위와 대상 방법 등을 둘러싼 여야간 의견차이가 쉽게 좁혀지기 힘들 전망이어서 ‘국조권정국’의 전도(前途)는 결코 순탄치 않을 것 같다.
여권은 이번 국정조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야당을 정치개혁협상으로 끌어들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또 국정조사를 ‘파업유도발언’ 문제에 국한해 실시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총체적인 실정(失政)을 부각시킨다는 방침 아래 ‘고급옷 로비의혹사건’과 ‘3·30재보선 50억원 사용의혹’ 등도 국정조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내년 16대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유리한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이같은 여야의 입장차이로 인해 국정조사기간 내내 여야간 격돌이 예상된다. 나아가 국정조사과정에서 진전부장의 발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국은 또다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란의 수렁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