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장병 「현장증언」…북한군 갑판서 AK소총 난사

  • 입력 1999년 6월 16일 01시 36분


“드르르르륵….”

15일 오전 다시 영해를 침범한 북한군 함정을 쫓기 위해 해군 제325 고속정(정장 안지영대위)이 북한군 경비정의 함미(艦尾)에 들이박은 직후 ‘콩을 볶는 듯한’ 총소리가 온천지에 울려 퍼졌다.

순간 기관실에 있던 기관병 이경민하사는 M16과 탄창 20여개를 들고 갑판으로 뛰어 올랐다. 갑판 위에는 탄피가 튀고 화약연기가 자욱했다.

북한군 함정에 깊이 박혀 있는 고속정의 선수 아래에서 북한군 3,4명이 갑판 위에 납작 엎드려 AK소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즉각 응사를 시작해 총열이 뜨거워지도록 총을 쏴댔다. 몇개나 탄창을 갈았을까….

점차 북한군의 사격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북한군 경비정에서 뿜어져나온 검은 연기가 낮게 하늘에 드리우고 있었다.

마침내 심연(深淵)보다 깊은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이하사는 그제서야 자신의 왼쪽 군복바지가 피에 흥건하게 젖어있는 걸 봤다.

같은 시간, 조타실에 있던 유중삼하사(탄약담당)는 갑판 위에서 소총으로 응사하는 20여명의 장병들에게 탄약을 공급하기 위해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 속으로 몸을 날렸다.

정신없이 선수와 선미를 오가며 탄약을 공급하기 5분여. 선수의 장병들에게 탄약을 나눠주고 낮은 포복으로 다시 탄약고로 들어오던중 왼쪽 허벅지가 따뜻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군복바지는 흥건하게 피로 범벅이 되있었고 군화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당시 정장 안지영대위는 어떻게해서라도 빨리 북한 경비정 선미에 박힌 배를 빼내고 효과적인 대응사격을 지시하느라 온힘을 쏟고 있었다. 수십번 기관출력을 올렸건만 배는 꼼짝하지 않았다.

피가 마르는 듯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조금 배가 움직이는 순간 총알 한발이 안대위의 목을 뚫었다.

이날 오후 국군수도통합병원 2층 회복실에서 나란히 누운 안대위 등 3명의 표정은 밝았다.

목에 붕대를 감은 안대위는 “우리 장병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많은 말을 하지 못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승리의 기쁨이 가득차 있었다. 옆자리에 누운 이하사는 자신이 북한군에게 부상당한 게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다.

“빨리 나아서 다시 싸우러 갈 겁니다.” 이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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