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7일 이후 연일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온 북한이 갑자기 조용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정부관계자와 대북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선제사격을 하고도 우리측의 단호한 응사로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당한 데 대해 충격을 받고 향후 대응방안을 숙고하고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북한은 그동안 총체적인 국력에서는 남한에 크게 뒤져도 군사력 부문에서는 우위에 있다고 자신해왔다. 따라서 이번 ‘패배’로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으리라는 게 정부측과 대북전문가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은 아마 의도된 도발을 하면서도 우리측이 그렇게 강력히 대응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특히 화력(火力)과 군비성능 면에서 우리측이 압도했다는 사실이 입증돼 북한으로서도 곤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향후 대응방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북한이 내친 김에 국지전 또는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이번 사태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추가 군사행동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예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현재로서는 북한의 추가 도발 징후가 포착되지 않고 있으나 언제 긴박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이 교전사태 후 별다른 움직임없이 방송매체 등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우리측에 돌리는데 주력하고 있으나 불시에 NLL을 침범, 잠수정과 간첩선 침투 등 도발행위를 재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이 16일 해군작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현 상황을 작전의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고 만반의 준비, 치밀한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이 언제, 어떤 형태로 패배를 만회하려 들지 예상하기는 힘들다. 이는 북한이 NLL을 침범하면서 의도했던 것을 과연 어느 정도 성취했느냐 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아무튼 서해상에서의 긴장이 완화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의 이해득실 판단과 선택에 달려있는 만큼 당분간은 북한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며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 외에 묘책이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한기흥·송상근기자〉eligius@donga.com
[전문가 시각]
▼남주홍 경기대통일대학원 교수▼
이번 사건은 북한이 계획적인 의도를 갖고 저지른 계산된 모험이다. 북한군의 지휘체계에 비춰볼 때 선제사격은 반드시 명령계통에 따른 것이지 현장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것이 실패로 끝남에 따라 북한은 지금 내부전열을 정비하고 새로운 방법의 도발을 모색하는 기간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미 양국의 반응도 지켜볼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소강상태일 뿐 위기가 끝난 상태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가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작다.
북한은 전쟁에 대한 의지는 있으나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없고, 국제정세도 북한에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 대한 의지와능력,기회가결부되지 않는 한 전쟁은 일으키기 어렵다. 또 전면전에 대한 의지 없이는 국지전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다만 북한이 서해안을 계속 분쟁지역화하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여기에 말려들어가서는 안된다. 안보는 체제의 존속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양보란 있을 수 없다. 북한은 분쟁상태를 장기화하면서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정면대응이 안될 때는 이런 방식을 취해 왔다. 북한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들의 전쟁의지를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
▼서재진 통일硏 선임연구위원▼
북한은 이번 교전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함에 따라 군사면에서의 대남 우위를 더이상 주장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북한은 남한측 군함에 의도적으로 선제사격을 했지만 수십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엄청난 피해를 당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특히 북한 군부에게 큰 타격을 주었을 것이나 그들로서는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북한이 이번 사태가 확전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자제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은 북한이 확전을 기피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북한은 말로는 한미 양국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백배 천배 보복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못할 것이다.
만일 보복에 나섰다가 또다시 격퇴당하면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체제의 한계가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제 유고 전쟁이 끝나 미 군사력의 한반도 증파가 가능해진 시점에서 북한이 더 이상 도발하는 것은 어렵다.
북한은 대신 이번 사태로 발생한 군함과 인명 피해에 대한 경제보상을 우리측에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차관급회담에서도 북한은 이 문제를 들고 나와 설전을 벌일 것이다. 이산가족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성의만 보인 뒤 비료추가지원 문제와 다시 결부시킬 것 같다.
▼오관치 포스코경영硏소장▼
북한은 전쟁을 할 의도가 없어 보인다. 북한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화학탄 등을 사용해 기습을 벌여야 하나 이미 한미 양국이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 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시점에선 확전을 해봤자 북한에 이득이 없기 때문에 일단 여기서 끝낼 것 같다.
현 상황을 더 끌고 나가면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원조 등이 무산될 수도 있다. 이는 아쉬운 것이 많은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도발은 잘못 시작된 것으로, 이제 마무리 단계라는 생각이다. 북한은 남한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국민의 반대여론을 조성하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상황이 더 진전된다면 한미 양국이 강경자세을 취하게 돼 북한으로선 얻을 게 없게 된다.
북한이 만일 추가도발에 나선다면 제일 우려되는 것이 울진사태처럼 특수전부대를 한국의 후방에 투입하는 일이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너무 크다. 우리가 그렇다고 북한을 폭격할 수 있겠는가.
북한이 배나 비행기를 침투시킬 경우엔 우리가 자위적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예컨대 500∼1000명의 특수부대를 보낸다면 우리의 대응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