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명단=유호열(고려대 북한학과교수) 박영호(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석수(국방대학원교수)]
▼西海 교전사태 배경 ▼
▽유호열 교수〓과거에도 서해 5도나 북방한계선(NLL)은 항상 긴장이 감돌던 잠재적 위험지역이었습니다. 특히 NLL 문제는 매우 어렵고 민감한 사안이어서 다른 문제들이 진전되면 다루자고 유보해 놓은 상태였어요. 서해교전사태와 관련한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태 추이를 보면 최고위층의 지침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먼저 문제를 일으킨 뒤 협상을 벌이는 식이에요. 94년에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해놓고 협상에 나섰습니다. 미사일도 일단 발사부터 했고 금창리 핵의혹시설 문제도 굴부터 파놓고 협상에 임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북한은 NLL 문제를 협상의제로 부각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한 것 같아요.
▽박영호 연구위원〓이번 사태는 보다 큰 틀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현재 북한이 처해 있는 상황은 상당히 수세적이에요. 최근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이 한미일 3국이 조율한 대북협상안을 가지고 평양을 방문했고, 일본도 북한과의 수교를 위해 서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 4자회담이 진행중이고, 북한과 중국 간에 정상급 회담이 개최되는 등 주변상황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북한을 몰아가고 있어요. 북한으로서는 주변상황이 요구하는 것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가에 대해 판단해야 할 시점이 온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아직 명확히 획정되지 않은 NLL를 구실로 한반도문제의 본질은 군사안보문제라는 것을 한국과 미국에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중국 베이징(北京) 차관급회담도 그래요. 논의주제는 이산가족과 ‘쌍방관심사’이지만 북한이 과연 이산가족문제에 대해 우리측이 원하는 만큼 논의할 준비가 돼있는지 회의적이에요. 따라서 새로운 의제를 설정, 이슈를 선점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봅니다. 북한이 애초부터 무력충돌까지 계획한 건 아니라고 보지만 이같은 의도를 감안할 때 지금은 ‘일부 성공’이라고 자평할 겁니다.
▽이석수 교수〓물론 단순한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무력충돌이나 폭력사태는 ‘취약한 지역, 취약한 시간대’에 발생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번 사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은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의 이동으로 힘이 분산된 ‘취약한 시간대’에 ‘취약한 지역’을 노린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는 거지요.
▽박연구위원〓북한은 아직 적극적으로 포용정책을 받아들일 당국 차원의 준비가 돼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북한에서 ‘전 사회에 모기장을 쳐야한다’며 자유화바람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비료지원이나 금강산관광사업 등을 통해 실리를 취하면서도 남북한은 근본적으로 군사적 갈등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남북차관급회담 전망 ▼
▽박연구위원〓서해교전사태 후 북측이 일단 인내심과 자제력을 발휘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베이징 차관급회담을 유보하거나 중단할 의도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이번 사태로 인해 NLL 문제가 부각된 이상 이산가족문제에 대해 성의있는 논의자세를 보이기보다는 지연전술을 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합의된 의제에는 ‘상호관심사’도 있기 때문이지요.
▽유교수〓하지만 상봉방문단 구성, 상호 생사확인을 위한 제한된 면회소 설치 등 북한체제에 근본적 위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이산가족문제에 대한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이교수〓북한이 교전사태 후 지금까지 언론매체를 통해 보인 반응을 보면 회담 일정은 예정대로 추진될 겁니다. 그러나 교전사태의 책임공방을 펼치며 이산가족 논의를 지연시킬 가능성이 크지요. 회담 전에 비료 10만t은 어차피 들어오는 것이고, 합의된 회담의제도 포괄적 추상적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이용하려 들 것입니다.
▼北-美관계에 미칠 영향 ▼
▽박연구위원〓북한은 앞으로 다른 모든 문제에 앞서 군사안보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협상에 나서도록 하려 할겁니다. 그렇게 되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다소 딜레마에 빠지게 될거예요. 미국 대통령선거전이 벌써 시작됐고 공화당 주도의 의회는 여전히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페리보고서’ 작성작업이 마무리 과정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유교수〓그동안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즉 미국하고만 상대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로 일관해왔어요. 하지만 이제 북한의 의도와 관계없이 남북한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됐습니다. 경수로협상 과정에서도 북한은 당초 미국만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원비용의 70%를 우리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나중에 깨닫고 우리 입장을 경청하게 된거지요. 이번에도 남한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을 겁니다. 우리로서는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교수〓북―미관계가 현재의 기조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대전환을 하느냐가 중요한데 기본적 흐름은 그대로 유지될 걸로 봅니다. 북한은 서해교전사태를 계기로 정전협정 당사자인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가장 우선적인 의제로 내세우면서 대미협상을 해나갈 겁니다.
▼햇볕정책 허실과 전망 ▼
▽박연구위원〓서해교전사태는 포용정책의 본질이 ‘안보와 협력의 병행’이라는 사실을 북한측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 계기가 됐어요. 그러나 교류협력과 관계개선은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입니다. 포용정책이 단기적으로는 비판에 직면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거예요. 다만 북한이 앞으로도 포용정책을 시험하려 들 게 분명한 만큼 전술적으로 속도조절을 할 필요성은 있다고 봅니다.
▽유교수〓포용정책이 대통령의 철학이니까 그대로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는 곤란합니다. 국가정책은 우선순위가 있어요. 무력도발 불용과 교류협력 등의 원칙을 병렬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순차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혼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책이 상호갈등할 때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해요. 그런데 ‘무력도발 불용’이라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당연히 이뤄지는 것으로 보는 것 같아요. 이는 중대한 오류예요. 무력도발을 어떻게 허용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 정책결정자 뿐만 아니라 일반국민의 이해도를 높여야 합니다. 교류협력은 금강산관광 등 가시적 성과가 있었지만 안보문제는 구체적인 것이 없었습니다.북한이장성급회담에 응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식이에요.
▽이교수〓포용정책에 대해 북한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사태는 북한이 우리에게 포용정책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겁니다. 동시에 우리의 총체적 위기대처능력이 상당히 향상됐다는 사실을 과시한 기회도 됐어요. 군대도 신속하게 대처했고 정부도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회를 가동했으며 민간의 동요도 없었어요.
포용정책이 흔들린 측면도 있지만 포용정책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도 된 겁니다. 과거 식의 ‘총체적 대립 아니면 총체적 화해’라는 식의 단선논리가 아니라 다차원적으로 이번 사태에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