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씨 억류사건 총정리/문제점]햇볕정책 허점노출

  • 입력 1999년 6월 27일 19시 40분


북한의 민영미(閔泳美)씨 억류사건은 정부가 ‘햇볕정책’의 최대 성과물이라고 내세웠던 금강산관광사업의 허점을 백일하에 드러낸 사건이다. 즉 이번 사건은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선포했던 관광세칙의 독소조항 등 관광객들에 대한 신변안전보장의 문제점 때문에 시작부터 예상됐던 일이었다. 북한의 신변보장 각서에서부터 민씨 억류후 석방 이후까지 문제점들을 정리해본다.

▽신변안전 문제〓정부가 금강산관광을 시작한 근거는 북측의 두 가지 신변안전각서. 하나는 현대측이 지난해 7월6일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와 체결한 ‘금강산 관광을 위한 부속계약서’. 이 계약서 제10조2항은 ‘관광객 등이 북측의 관습을 따르지 않거나 사회적 도덕적 의무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광객을 북측내에 억류하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고 명시해놓았다.

또 지난해 7월9일 북한측이 백학림 사회안전부 부장 명의로 밝힌 신변안전보장각서. 여기에는 ‘우리측 지역에 들어오는 현대 실무대표단 및 합영회사 직원, 공사인원, 유람선 승무원, 그리고 남측 관광객들의 신변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그 이후 현대와의 협상이 결렬되자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관광세칙 35조다. 이 35조에는 ‘관광객들이 정탐행위를 하거나 공화국을 반대하는 행위를 하였을 경우 공화국의 법에 따라 처리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북한이 자의적으로 관광객들의 국내법 준수여부를 판단토록 돼있다. 하지만 정부나 현대측은 관광세칙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금강산 관광을 시작했고 이것이 결국 민씨 억류의 화근이 된 셈이다.

▽협상과정〓1차적 문제점은 남북 당국자간 채널이 없다는 점. 이에 따라 민씨 석방을 위한 협상이 현대주도로 이뤄졌다. 물론 정부가 막후접촉을 통해 북한 당국자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벌이긴 했지만 돌발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남북간의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은 큰 허점이다.

또 이번 협상과정에서도 정부와 현대측이 협상내용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궁금증을 자아냈다. 일각에서는 현대가 민씨 석방의 조건으로 3월 발생한 만폭호 충돌사건의 보상비에 ‘+α’를 지급키로 했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가 사건 초기에 보인 안이한 대처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대는 민씨 억류 이틀째인 21일 정부의 출항 보류 지시를 어기고 승객 540명을 태운 봉래호를 출항시켰다가 회항시키는 ‘배짱’을 보이기도 했다.

현대는 또 민씨 억류기간 중 민씨를 전혀 접촉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드러냈고 민씨의 억류생활에 대한 전언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는 줄곧 “민씨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북한측의 조사도 강압적이지 않다”고 말했지만 25일 귀환한 민씨의 상태는 전혀 달랐다.

▽석방 이후〓민씨는 석방 사흘째인 27일까지 또다른 격리생활을 겪고 있다. 당국의 통제로 언론 접촉이 철저히 차단되고 있는 것은 물론 남편 등 주변인물들을 통한 간접적인 얘기조차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민씨는 현재 옆 병실에 임시사무실을 차린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요원 3, 4명으로부터 합심을 받는 중이다.

민씨의 남편 송기준씨조차 “조사가 진행 중인 동안에는 병실에서 나와 있는 실정”이라며 “아내와 자유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송씨가 26일 밤 병원에 도착한 두 아들을 민씨의 병실로 데리고 가기 위해 기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자신을 ‘통일일꾼’이라고 밝힌 40대 남자 등 3명이 송씨곁을 밀착해 지키고 있었다.

이같은 당국의 엄격한 통제는 말할 것도 없이 민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향후 남북관계에서 엄청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 그러나 통제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민씨가 야당인 한나라당의 지구당 간부임을 감안할 때 이 문제는 자칫 잘못 다루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26일 민씨를 만난 한나라당 김일주(金一柱)성남중원지구당위원장은 “민씨가 북한에서 ‘말못할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면서 ‘퇴원하고 나면 지구당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윤영찬·이명재·권재현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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