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대·윤승모·박제균기자〉kee@donga.com
▼김대통령-이회창총재 불신▼
정국 교착상태의 근저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간의 뿌리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두 사람 사이에 97년 대선 때부터 싹튼 감정의 앙금은 이제 ‘인간적으로’ 회복불능의 관계로 치닫는 느낌마저 준다. 김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이총재가 ‘DJ비자금’을 폭로한데다 정권출범 후 정국운영에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며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이총재도 대선 때 김대통령이 아들병역문제를 물고늘어진데다 정권출범 후 ‘세풍’ ‘총풍’을 거치면서 자신을 정치적으로 죽이려 한다는 생각을 갖게 돼 김대통령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그동안 여야총재회담이 두차례 열렸지만 말 그대로 ‘일회용(一回用)’이었을 뿐 정국정상화에 기여하지 못한 것도 두 사람의 불신관계 탓으로 볼 수 있다.
▼대화채널이 없다▼
여야3당 원내총무들은 10여일째 거의 매일 회담을 하고 있지만 결과는 항상 비슷하다. “특별검사제 및 국정조사 문제와 관련해 여야가 기존 입장을 고수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
자기 주장과 선전만 있고 설득과 상호이해는 없는 게 여야 대화의 현주소다. 이는 속을 터놓고 얘기할 상황과 채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진단이다.
심지어 여야 총무단끼리도 “한나라당 총무는 얘기 내용을 언제 공개할지 모르는 사람이라 깊은 대화를 하기 어렵다” “국민회의 총무는 재량권이 없다”며 상호불신만 증폭되고 있다.
허심탄회한 막후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같은 대화론자들은 소수다. 여기에다 각당 지도부가 대화론자들에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어 막후대화 창구가 열리기도 힘든 형편이다.
▼특검제와 옷사건▼
특별검사제와 ‘옷사건’에 대한 여야의 경직된 태도가 정국교착의 근인(近因)이다.
당초 ‘옷사건’과 ‘파업유도의혹사건’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했던 한나라당은 특검제 도입을 새로운 조건으로 추가했다. 여당은 국정조사든, 특검제든 파업유도의혹사건에 한해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제도로서의 특검제 도입은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정도까지만 신축성을 보인 상태다.이에 따라 문제의 핵심은 ‘옷사건’ 국정조사로 모아졌다. 여당은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李姬鎬)여사를 비롯해 현직각료 부인들이 국정조사장에 서는 상황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 그러나 한나라당도 ‘옷사건’ 국정조사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다.
결국 ‘옷사건’에 대한 타협점을 찾느냐의 여부가 정국 전개의 향방을 가르는 관건이다.
▼與 과도체제 지속▼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데는 여당의 과도체제 장기화도 한몫을 했다.
김대통령은 정권 출범 이후 줄곧 국민회의를 총재권한대행체제로 이끌어 무기력한 상태로 ‘방치’했다. 이는 ‘옷사건’ 등 일련의 사태에서 당이 주도적으로 수습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김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는 소극적 자세를 취한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처럼 국민회의가 민심수렴 기능을 제대로 못하면서 지지도가 계속 하락하는 형국이 됐다. 국민회의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당의 무기력이 여권 전체의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김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국민회의 내에서는 8월 전당대회 때 당대표 경선 등 획기적인 활성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강경파▼
한나라당 신영국(申榮國) 이우재(李佑宰) 이신범(李信範) 김문수(金文洙) 안상수(安商守) 이재오(李在五)의원 등 이른바 ‘초재선 강경파’ 의원들은 28일 “당의 대여 칼날이 너무 무뎌졌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날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 등 총무단과 만난 자리에서 “전면 특검제와 국정조사에 대한 여권의 입장 변화없이 국회 일정을 합의해 준 것은 잘못”이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또 “29일 당장 의원총회를 열어 여권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장외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나라당은 정쟁에만 치우치지 말고 건설적인 대안세력이 돼야 한다”는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발언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총재측은 “초재선 강경파들이 너무 강경 일변도여서 부담이 될 때가 적지 않다”고 토로하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