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은 김대행 경질로 상당한 권위 손상을 입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국민회의 당직자들의 일괄사표를 받고 김대행만은 유임시키겠다고 공식발표했으나 불과 6시간만에 이를 번복, 경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자신이 총재로 있는 집권당 총재권한대행의 거취문제에 대해 전격적으로 입장을 뒤바꾼 것은 대통령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관심은 김대통령이 이런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왜 김대행을 경질했느냐 하는 점에 모아진다. 물론 이날까지만 해도 김대통령이 김대행을 경질했으면 하는 의사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김대행을 경질하려고 했으나 마땅한 원내인사가 없어서 일단 미뤄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한다 해도 김대통령의 조치는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결별불사’ 발언을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사실 현시점에서 김대통령이 가장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변수는 ‘초읽기’에 들어간 김총리와의 내각제담판임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통령은 김총리의 발언을 내각제담판의 ‘샅바싸움’으로 인식한 듯하다. 따라서 김총리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최근 들어 정권의 장래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조짐들이 곳곳에서 돌출되는 상황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고급옷 로비의혹사건’ 등 줄을 잇는 악재로 민심이 이반된 상태에서 김총리마저 등을 돌릴 경우 정권의 명운이 위태로워진다는 절박감을 느꼈을 법하다.
그러나 김대통령으로서는 결과적으로 8월의 내각제담판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총리로서는 김대통령이 치명상을 입으면서까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해준 마당에 내각제 양보 요구를 매정하게 잘라버리기가 어렵게 되지 않았느냐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관측이다.
하지만 내각제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된다 하더라도 이번의 김대행 경질과정은 김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