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칼럼]제헌절에 돌이켜본 改憲史의 교훈

  • 입력 1999년 7월 16일 19시 53분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이 52년 계엄령을 선포한 뒤 개헌안을 통과시킨 ‘정치 파동’은 확실히 잘못이었다. 그러나 변명이 시도될 수 있다면 첫번째 헌법의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꿈으로써 정부 선택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있었기에 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고, 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정부 여당이 부정을 저질러도 전국민을 상대로 저지르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4월혁명을 불러일으켜 자유당 정권이 붕괴했던 것이다.

▼대통령직선제의 힘 ▼

대통령직선제의 위력은 자유당 정권 말기에 자유당 일부 세력이 야당이던 민주당 일부 세력을 회유해 의원내각제로 개헌함으로써 국민의 직접 심판을 회피하려 했던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이렇게 볼 때 4월혁명 직후 민주당이 의원내각제로 개헌함으로써 스스로 약체 정권으로 출범한 것은 공약을 지켰다는 점에서는 옳았으나 정치적으로 사려깊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만일 대통령 직선제로 민주당 정권이 세워졌다면 쿠데타를 꿈꾸던 정치장교들도 국민이 직접 뽑아준 대통령과 정부를 만만히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5·16 군사정권이 ‘민간정부’로 돌아서던 때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했던 것은 대담한 정면돌파였다. 비록 집권자 프리미엄을 활용했으나 직선제를 거쳤기에, 그것도 강력한 야당 후보와의 치열한 경쟁을 치렀기에,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그 뒤 숱한 저항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가 10월 유신이라는 제2의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 간선제로 후퇴한 것은 자신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대통령의,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헌법’이라고 조롱되던 유신헌법이 입법 사법 행정 3부를 뛰어넘는 막강한 권력을 주었다고 해도, 그가 대통령 직선제를 두려워하고 있음이, 쉽게 말해 정상적으로 대통령 직선을 치르면 낙선할 것임을 스스로 인정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판에 무슨 권위로 수많은 도전에 맞설 수 있었겠는가.

10·26 직후 최규하(崔圭夏)대통령 쪽에서 왜 2원집정부제를 내세웠던가? 툭 터놓고 말해 대통령 직선제로는 정권을 연장할 수 없다는 계산에서 간선제를 골격으로 하는 낯선 제도를 거론했던 것이 아닌가. 5·18 신군부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정권을 잡을 욕심은 태산 같은데 직선제로 정권을 잡을 능력은 제로에 가까웠기에 조작이 쉬운 체육관 선거를 실시했던 것이다. 전두환(全斗煥)정권이 뒷날 ‘대통령을 내 손으로’ 구호 아래 대통령 직선제 개헌운동이 뜨겁게 달아올라 그 불길이 청와대 부근까지 이르게 되자 허겁지겁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들고 나와 맞불을 놓아보려고 했던 것은 자신없는 직선제는 피해보자는 속셈에서 나왔음을 천하가 다 알고 있었다.

▼ 개헌의 주체는 국민 ▼

6·29선언이 타오르던 민심의 불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때 만들어진 헌법이 오늘날까지 원형대로 유지되면서 헌정사상 가장 긴 수명을 누리는 배경에는 정부 선택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의원내각제와 그 연장선 위에 있는 2원집정부제 모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따라 출발한다면 분명히 민주주의에 맞는다. 선진 민주국가들이 거의 모두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사실도 참고가 된다. 천문학적 숫자의 선거비용, 더욱 깊어지는 지역패권주의 등 병폐를 피하기 위해 대통령 직선제를 고쳐야 한다는 논리도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직선제로는 도저히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계산에서, 또는 정권연장 수단으로, 국민의 정부 선택권은 배제시킨 채 정치인들의 흥정과 야합을 통해 내각제가 추진된다는 의혹을 대다수 국민이 갖게 된다면 국민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내각제 ‘연기’와 관련한 공동정권의 입장은 양면성을 지녔다. 한편으로 분명히 대선 공약을 어기는 일로 공동정권에 대한 신뢰 문제가 제기된다. 다른 한편으로 아직은 ‘부패한 국회의원들’에게 쉽게 위임될 수 없는 정부선택권이 국민의 직접적인 손안에 유지된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공동정권의 정략결혼이 내년 총선에서 어떻게 심판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나 제헌절 51주년을 맞아 개헌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국민이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레 강조하고자 한다.

김학준〈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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