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을 향해 “민생을 외면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조속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 회기 연장까지 주장하던 국민회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돌아선 반면 “여권이 ‘세풍(稅風)’ 수사를 재개하려 한다”며 국회 거부까지 외치던 한나라당이 국회를 빨리 열자고 재촉하는 상황이 됐다.
국민회의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직장인 세금감면과 대학생 학자금 융자 등 민생현안을 빨리 처리해 달라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며 야당의 국회 거부를 비난했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19일부터 “국회를 범법자들의 피신처로 악용하려는 의도가 명백할 경우 임시국회가 소집돼도 당면 현안처리가 어려울 게 분명하다”며 “이런 상태에서 임시국회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입장을 다시 정리했다.
검찰의 ‘세풍’ 수사과정에서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의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면 임시국회가 또 다시 ‘방탄국회’로 이용될 게 뻔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내각제 연내개헌 유보 문제로 자민련의 당내 사정이 저렇게 어수선한데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겠느냐”고 한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원내총무의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박총무는 또 “현재 외유에 나선 의원들이 50∼60명 가량 되고 조만간 외유를 떠날 의원까지 감안하면 70명 이상이 자리를 비우게 돼 국회 운영이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박총무는 20일 저녁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와 비공식접촉을 가진 자리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한편 ‘세풍’ 수사에 발끈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함께 조사하자며 국회를 거부했던 한나라당이 오히려 국회소집에 적극적 자세를 취하는 것은 국회 공전이 장기화할 경우 그동안 얻어놓은 특별검사제 협상 성과까지 놓칠지 모른다는 초조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또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정(司正) 태풍’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원내투쟁’을 병행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