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현 정부의 ‘계좌추적 실상’은 이렇게 요약된다.
‘무차별’은 당사자나 측근 친인척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고, ‘무제한’은 추적당하는 사람의 통장이면 제한없이 조사한다는 뜻이며, ‘무기간’은 조사대상 기간과 관계없이 통장개설일부터 현재까지 모두 조사한다는 의미다.
한나라당 의원 중에 계좌추적을 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검찰의 무분별한 계좌추적이 소속의원들의 위기감을 자극해 당의 결속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의원까지 나올 정도다.
이회창(李會昌)총재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신경식(辛卿植) 하순봉(河舜鳳)의원같은 총재측근의원들과 이신범(李信範) 정형근(鄭亨根)의원같은 ‘DJ공격수’들이 대표적인 ‘피추적자’들이다. 일부 의원은 “계좌추적을 당한 친인척들이 나를 피하는 바람에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한 고위당직자는 10일 “최근 계좌 뿐만 아니라 90년대 초에 개설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휴면계좌의 입출금 내용까지 조사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당의원들의 경우 계좌추적을 당하고도 이 사실이 알려지면 후원금이 끊길 것을 우려해 실상을 공개할 수조차 없다는 게 이 당직자의 하소연.
그는 또 “금융기관에서 계좌추적 사실을 당사자에게 즉각 통보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사정당국에서는 ‘6개월 후에 통보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악용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총재특보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내 계좌가 6개월 전에 추적당했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허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들은 10일 일부 언론에 ‘세풍자금 유용 10명 추가확인’이라는 내용이 보도되자 “여권의 계좌추적 악용사례가 또한번 드러났다”고 흥분했다. 이들은 “계좌추적을 통해 세풍자금이 이런저런 계좌로 옮겨졌다고 해서 그 돈이 유용됐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며 항변했다.
야당 뿐만 아니라 사회 주요인사들에 대한 계좌추적이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 금융실명법 예외조항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은 금융기관 종사자가 예금주의 요구나 동의없이는 금융거래자료를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실명법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경우 △국정감사에 필요한 자료인 경우 △재정경제부장관과 금융감독기관장이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감사를 위해 필요로 하는 경우 △조세탈루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등은 금융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처럼 금융실명법에 명시된 예외규정외에도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해 정보제공이 이뤄지기도 한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