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22부(재판장 이호원·李鎬元부장판사)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은 몰라도 형사처벌은 할 수 없다’는 쪽이었다.
재판부가 환란책임자로 몰린 강경식(姜慶植)전경제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전대통령경제수석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검찰은 ‘여론에 편승한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그러나 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전국민을 고통에 몰아넣고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불러온 데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됐다는 일부의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1년 3개월을 끈 이 사건재판의 주요 쟁점은 두 사람이 ‘외환위기의 실상을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축소 은폐 보고했다’는 직무유기 혐의 부분.
검찰은 두 사람이 97년 11월8일경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도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변호인들은 “정책판단 잘못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시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검찰의 기소를 ‘공소권 남용’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한국은행이나 각종 경제연구소의 외환위기 경고를 안이하게 인식한 잘못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를 은폐하고 축소 보고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못박았다.
특히 관련증거를 종합해 볼 때 당시 청와대 재정경제원 한국은행 등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경제학자들도 IMF행을 선택가능한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검토했을 뿐이라는 것.
따라서 이들이 IMF행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11월13일 이전인 10월29일과 11월8, 10일에 이를 은폐하고 축소 보고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강전부총리가 외환시장개입 중단지시를 내린 것에 대해서도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이같이 두 사람에게 적용된 직무유기 혐의는 물론이고 강전부총리에게만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까지 환란과 관련해서는 ‘전부 무죄’라는 결론을 내려 검찰에 아픈 상처를 남겼다.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것은 진도와 해태그룹에 대한 대출압력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에 그쳤다. 그나마 강전부총리가 주리원백화점에 대출해 주도록 압력을 넣은 부분은 ‘퇴직 후 부탁한 것’이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법조계에서는 애당초 검찰의 기소 자체가 무리였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환란과정에서 경제관료들이 정책판단을 잘못해 나라를 ‘IMF 수렁’에 빠뜨린 책임이야 면할 수 없지만 이를 사법의 잣대로 단죄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의 무죄 선고에 납득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할 뜻을 밝히고 있어 항소심 공판에서 환란은 ‘인재(人災)’라는 검찰의 주장과 변호인간의 공방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최영훈기자〉c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