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진홍/人材를 키우는 정치

  • 입력 1999년 9월 12일 18시 31분


이승만(李承晩)초대 대통령과 같은 시기에 집권했던 일본 총리는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였다. 둘 다 영어가 유창했고 국제감각이 탁월했으며 카리스마를 지닌 점에서는 비슷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 한 가지가 있다. 요시다 총리는 후계자가 될 사람들을 여럿 길러냈고 이 대통령은 전연 그러지를 못했다. 요시다 총리는 재임 중 젊은 정치 지망생이나 소장 관료 중에서 탁월한 인재들을 발탁해 길렀다. 일컬어 요시다 정치학교라 부른다. 그렇게 길러진 인재들이 요시다 이후 총리직을 번갈아 맡았다. 그 인맥이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을 일으켰다.

◆戰後 日부흥 원동력

요시다가 길러낸 인재들 중에 우리 귀에 익은 이름들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등이 있다. 이들 인맥의 마지막 주자가 미키였다. 공교롭게도 미키 총리 이후로 일본 정치는 균형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말하자면 요시다 총리가 기른 인재들이 끝나면서 일본을 이끌어 나갈 지도력에 공백이 생긴 셈이다.

요시다 총리와 같은 시기에 한국을 통치했던 이대통령은 어떠했던가. 먼저 정적(政敵)이 될만한 거목들이 하나둘씩 차례로 쓰러져 갔다. 겨레의 장래를 위해 꼭 살아 남았어야 할 인재들이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김구(金九) 여운형(呂運亨) 송진우(宋鎭禹)는 말할 것도 없고 김규식(金奎植) 조봉암(曺奉岩)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사연으로 희생당했다. 민족의 기생충과 같은 친일매국 세력들은 길거리를 활보하는 동안에 애국지사들은 하나씩 거세됐다. 그 후로 지금껏 이땅에는 사람을 기르는 풍토가 사라졌다. 가까운 예를 들어 지금 한국 정치판을 움직이고 있는 3김씨를 살펴보자. 그 어른들이 40대 기수론의 기치를 들고 나와 국민에게 신선한 기운을 일으켰던 때가 있었다. 그 후 30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정치판은 3김씨에게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마디로 잘라 말하건대 그들이 사람을 길러 자신들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고 겨레의 백년대계를 도모하겠다는 안목과 비전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우리 백성은 숱한 장점을 지녔다. 영특하고 정이 많고 부지런하고 진취적이다. 세계 어느 민족이나 어느 백성들에 비해 앞설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동안 우리 역사는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가. 바로 지도력 탓이다. 백성들의 뛰어난 자질을 하나로 묶어 민족발전으로 이끌어 나갈 지도력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계 못 키운 3金

지금에 와서 우리가 해야 할 바가 무엇인가. 바로 사람 기르는 일이다. ‘사람 기르기’는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진행돼야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의 육성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 베트남 민족영웅 호치민(胡志明)을 보자. 그는 평생을 청빈하고 일관되게 민족을 섬기는 자로 살면서 후대를 위해 일꾼을 기르는 일에 전심전력했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중에도 장래성 있는 젊은이들을 가까이에 두고 가르치며 사명감을 심은 후 선진국으로 보내 선진 경영기법이나 국가경영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게 했다. 그들로 자신의 사후에라도 나라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일에 대비했다.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은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우리는 링컨이 인재들을 얼마나 아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정적들을 정부각료 핵심자리에 앉혔다. 가까운 사람들이 무모한 짓이라고 충고했을 때 그는 대답했다. 나는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 그를 쓴다고 했다. 참으로 열린 마음을 지닌 열린 지도력이었다 하겠다. 그런 사례들에 견주어 생각해보면 지금 이 나라의 사람쓰는 기준은 너무나 잡탕이라 여겨진다. 오공(五共) 육공(六共) 잡공(雜共)이 뒤섞여 줄서기에 따라 이권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니 자식들 보기에 창피스런 어른들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도 3김씨들이 각기 신당을 만들고 있다고 연일 보도되고 있다. 두손 모아 빌며 들려주고싶은말이있다.

“뜻을 같이 하고 비전을 함께 하는 투명한 사람들을 길러 겨레의 장래를 도모하는 큰 정치를 해 주십시오. 권력은 짧고 민족은 길다는 말을 기억해주십시오.”

김진홍(목사·두레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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