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탈냉전시대 오나/분야별 전망]

  • 입력 1999년 9월 13일 19시 32분


베를린 북―미 고위급회담의 타결로 한반도 주변 정세에 긍정적인 전기(轉機)가 마련됨에 따라 정부는 남북관계도 화해 협력 국면으로 진입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한반도에서의 냉전구조 해체를 목표로 정부가 추진할 조치들을 분야별로 점검, 조망(眺望)해본다.

현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은 북―미 관계의 개선에 힘입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6·25전쟁 후 40여년 간 실시해 온 대북 봉쇄정책이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 외에 평화실현을 위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판단, 포용정책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정부는 6월 금강산관광객 민영미(閔泳美)씨 억류 사건 등 북한의 돌출적인 행동으로 남북관계에 긴장이 조성됐을 때도 포용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북한은 ‘햇볕정책’으로 일컬어지는 대북 포용정책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를 북한에 주입,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북한이 내심으로는 포용정책의 취지를 이해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북대화-주변국 관계▼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대북지원을 하기 위해선 남북대화 재개와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남북한은 6월22일부터 7월3일까지 2차례에 걸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차관급 회담을 가졌으나 북한이 당초 의제인 이산가족문제는 외면한 채 연평해전사태에 대한 한국측의 사과 등을 요구하는 바람에 아무런 합의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4월 베이징 비료회담에 이어 올해 회담이 또다시 결렬된 것은 북한이 한국측으로부터 비료를 얻는데만 관심이 있을 뿐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2월 한국정부에 대해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선행실천사항으로 내세워 올 하반기 고위급 회담 개최를 제안했던 만큼 남북대화가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라고 본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관계만을 개선하려고 하지만 남북대화를 비롯한 남북관계의 진전없이 대미 접근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일본과의 대북 공조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은 5월 북한을 방문한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을 통해 북한측에 각종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는 구상을 전달하고 이를 수용하라고 설득 중이다.

미국이 이번에 베를린회담에서 북한에 제시한 경제제재 완화 등의 조치는 이같은 포괄적 협상안의 일환. 정부는 특히 미 일의 대북관계가 남북관계보다 너무 앞서 나가지 않도록 유의할 방침이다. 현실적으로 한미일의 대북접근이 같은 속도로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큰 틀에서 볼 때는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4자회담의 멤버인 중국, 최근 대북관계의 복원을 추진 중인 러시아 등과도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지속적인 협력을 모색할 방침이다.

▼남북경협 ▼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가 당장 남북경협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 97년 말 시작된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하의 경제난 여파로 남북경협이 아직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도 북한의 열악한 인프라 시설과 투자 및 교역 관련 법규의 미비 때문에 북한 시장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는 분석한다. 그러나 북한 경제가 차츰 회복돼 구매력이 커질 경우 미국기업들은 북한 진출에 따르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북한과의 교역경험이 풍부한 한국측과 합작 등의 형태로 대북사업을 추진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은 대미수출을 위한 자본과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남북경협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선 1차 상품 위주의 조악한 수출품목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또 한국이 갖고 있는 미국 시장에 대한 오랜 ‘노 하우’를 전수받기 위해서도 한국 기업과 손을 잡으려 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도 나온다.

한편 일부에서는 미 일이 북한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도록 정부와 기업이 대북진출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아직은 먼 장래의 얘기이며, 미국의 대북경제제재가 북한의 대외교역 및 경협 활성화로 바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국미사일 해법은▼

군 관계자들은 13일 북―미 베를린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지만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는 늘려야 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95년부터 한국의 미사일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여온 한국과 미국은 현재 180㎞로 묶여 있는 사거리를 300㎞로 늘리는데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태이다.

국제기구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서 허용하는 사거리 300㎞까지는 연구 개발 생산 및 배치를 허용해야 한다는 한국 주장에 미국이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양국은 지난해 8월 열린 ‘한미 비확산협의’와 올 1월 제30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이런 방향으로 의견을 일치시킨 뒤에도 공식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사거리 300㎞ 이상의 미사일과 관련, 미국이 생산단계에서부터 도면을 미국에 제공하는 등 연구개발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특히 시험발사는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 때문.

한국은 북한이 80년대 중반 스커드B(234㎞)와 스커드C(500㎞), 93년 노동1호(1300㎞)를 개발한데 이어 지난해 8월 대포동1호(1700㎞ 이상)를 발사했으므로 우리도 300㎞ 이상의 미사일을 연구개발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시험발사는 당연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거리 300㎞ 이상의 미사일을 생산 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 역시 미국은 양해각서, 한국은 180㎞ 자율규제 때와 마찬가지로 서한형식으로 밝히자며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70년대 후반 순수기술로 개발한 ‘백곰’미사일을 80년대 후반에 사거리 180㎞의 ‘현무’로 개량하면서 ‘미사일 사거리를 180㎞로 제한하겠다’는 서한을 당시 외무부 과장 이름으로 보냈었다.

한편 국방부는 북―미 베를린협상 타결로 한반도 정세가 안정될 것으로 보면서도 북한이 체제 유지 차원에서 일정한 수준의 긴장을 계속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 북한이 미국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방한계선(NLL)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제기, 협상카드는 물론 긴장조성을 통한 내부결속에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기흥·송상근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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