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법원장-감사원장 지명 배경]고강도 개혁의지 담아

  • 입력 1999년 9월 16일 19시 22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신임 대법원장에 최종영(崔鍾泳)전대법관을 지명한것은사법개혁추진에 가장 적임자라는 법조계 안팎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5,6명의 대법원장 후보를 놓고 고심하다 최전대법관의 능력과 성품을 가장 높게 샀다는 것.

서울 민사지법원장 재직 때 사건적체 해소와 신속한 사건처리를 위해 집중심리제를 도입했고 법원행정처장 시절에는 영장실질심사제를 도입, 법원민주화 등 사법개혁을 주도했다고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설명했다. 박수석은 또 소신과 결단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화를 중시, 법조계 안팎에서 신망이 높은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요인 못지않게 김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도 크게 작용한 듯하다. 유신 시절인 76년 ‘3·1절 명동성당 구국선언사건’때 기소됐던 김대통령이 피고인의 입장에서 제출한 재판부 기피신청을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당시 서울고법판사였던 최전대법관. 이 때문에 최전대법관은 대구고법으로 전보됐으며 이후 상당기간을 한직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불이익을 감수했던 것. 김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그에 대한 개인적 신뢰감과 함께 소신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이 이종남(李種南)전법무부장관을 감사원장에 내정한 것은 무엇보다 실무능력을 높이 산 결과라는 게 청와대측의 얘기. 공인회계사와 법학박사로서 미 하버드대와 고려대 객원교수를 지낸 이전장관은 특히 국제조세협회 이사장을 역임, 조세분야에서는 국내 1인자라는 평을 듣고 있어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와 개혁을 치밀하게 추진해야 할 감사원장에 적격이라고 김대통령이 판단했다는 것.

대통령이 외국순방 중 주요 인사를 단행한 것은 이례적인 일. 이는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에서 인물검증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시드니〓최영묵기자〉moo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