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17일 대북제재 부분해제를 발표하자 로이터통신은‘역사적이고 정치적으로 위험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은 제재해제에 대한 미국 의회 일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라는 뜻. 역사적이라는 평가는 거의 반세기동안 시행된 대북제재의 상당부분이 해제돼 북―미관계 정상화의 힘찬 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역설적(逆說的)이게도 이런 모든 변화는 미국의 현상유지(status quo)정책에서 기인했다.
▼관계정상화 본격 시동▼
대북협상의 실마리를 푼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포괄적 협상을 제안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의 핵개발로 현상유지가 흔들렸다. 94년에는 전쟁위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제네바합의를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함에 따라 지난 5년간 현상이 유지돼왔다. 이것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대북 억지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상유지로 되돌아가려면 핵에 이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개발도 동결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관계정상화라는 대가를 북한에 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미사일개발 동결 '빅딜'▼
페리조정관은 대북협상이 ‘우리가 바라는 북한정권과의 협상이 아닌, 지금 존재하는 정권과의 협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북한의 장래에 대해 △개혁개방에 성공하거나 △곧 붕괴하거나 △그럭저럭 버텨나가는(Muddling through) 세가지 가능성을 상정했다. 그는 광범위한 인터뷰와 정보보고를 바탕으로 북한이 그럭저럭 버텨나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럴 경우 한반도주변과 심지어는 미국까지 위협하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만 억제한다면 한반도 안팎의 세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그는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북한의 개혁개방이나 대북 수교보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 그의 당면 정책목표가 됐다.
그 방법은 일괄타결(Package Deal)이 아니라 단계적 접근(Step by Step)이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중단에 이어 미사일개발 동결에 이르는 단계마다 추가 대북제재 해제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국교수립까지 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 적국에 대한 고립 또는 대결정책을 포용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는 클린턴 행정부의 전략과 부합했다.
▼의회일부 반대…험로 예상▼
클린턴 행정부는 최근 적성국이었던 베트남과 수교했고 쿠바에 대한 제재도 일부 해제했으며 이란과의 관계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정부의 전폭적 지지도 받고 있는 이 정책의 성패는 북한과 미국 의회에 달렸다.
북한의 태도는 추후 협상을 통해 검증된다. 미 하원의 벤자민 길먼 국제관계위원장은 제재해제에 반대하면서 “페리의 대북 접근법은 차기 정권에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