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찬에 김대통령과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및 김종필(金鍾泌)총리는 부부동반으로 참석했으나 최규하(崔圭夏)전대통령은 부인 홍기(洪基)여사의 와병으로 혼자 참석했다.
○…김총리는 이날 전직대통령들을 기다리는 자리에서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께는 연락을 드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설명하자 “아마 세 형님 보기가 무서워서 그런가 보죠”라고 말을 받아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오찬장에서 김대통령은 배석한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부장관과 한덕수(韓悳洙)통상교섭본부장에게 APEC 정상회의와 뉴질랜드 및 호주 국빈방문 결과를 먼저 설명하게 했다.
이에 전전대통령은 “이번 APEC에서 김대통령의 외교성과가 대단한 것 같다”며 “우리나라가 외교적 주도권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축배를 들자”고 제의.
이어 김대통령이 베를린 북―미 회담과 ‘페리보고서’에 대해 설명하자 노전대통령은 “국민이 처음엔 다소 우려했으나 내용이 알려져 그런 우려가 없어진 것 같다”며 “당사자 간 해결원칙이 존중되고 있는 것은 우리 외교사에서 평가할 만한 일”이라고 칭송.
○…김대통령은 “베를린회담 내용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단을 의미하느냐”는 전전대통령의 질문에“일단 좀더 지켜봐야 하지만 합의에 이르렀다는 게 중요하다”며“이번에 중국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게 되면 일본 내 군국주의 우익세력에 명분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
화제가 동티모르 문제로 옮겨지자 노전대통령이 이날 일부 신문에 실린 인도네시아 교민들의 파병반대 광고 등을 지적하며 인도네시아 정정에 관심을 표명하자 김대통령은 “이번 파병은 유엔과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식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아무 문제 없음을 강조.
전문외교관 출신인 최전대통령도 “우리나라가 외교관계에서 주도적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없었는데 점차 그런 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해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
○…김대통령과 전직대통령들이 담소하는 동안 이희호(李姬鎬)여사는 전전대통령부인 이순자(李順子)여사, 김총리 부인 박영옥(朴英玉)여사와 역시 해외순방을 화제로 얘기를 나눴으나 노전대통령 부인 김옥숙(金玉淑)여사는 노전대통령 옆에서 침묵했다. 이날 오찬은 갈비구이 등 한식으로 차려졌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