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괴이한 충돌의 발생 경위야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짐작하고 남는다. 중앙일보 수준의 유력 언론사는 문화적 권력기관이다. 정치권력은 이 문화권력의 고위층이 웬만한 잘못을 저질러도 눈감아준다. 싸워서 좋은 일은 없는 반면 사이가 원만하면 좋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김대중대통령이 야당 지도자 시절 언론의 홀대를 받은 것은 바로 이러한 ‘권언유착(權言癒着)’ 때문이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아는 이유 때문인지 김대중 정부와 중앙일보는 제대로 ‘유착’되지 못했고, 그런 불편한 상황에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개인적 비리혐의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 홍사장의 구속이 어떤 ‘정치적 기획’의 소산인지, 아니면 우연의 산물인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이 싸움이 어떻게 종결될지 예측할 능력도 없다. 하지만 이 사태의 핵심인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를 남용하거나 무시할 경우 이 싸움에서 정부와 중앙일보 둘 모두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언론자유는 사주(社主)의 이익을 지키고 탈법의 방패막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부도 언론을 길들이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국민의 정부’라 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일요판을 내가면서까지 홍사장의 구속을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박지원 전청와대공보수석이 편집국장과 논설실장 등 중앙일보 주요 직책 인사에까지 개입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반면 청와대 박준영대변인은 중앙일보사쪽에서 홍사장의 개인비리를 덮어주면 인사와 보도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정부에 협력하겠다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제안했지만 보광그룹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홍사장 사법처리는 언론 길들이기가 아니라 ‘비리 척결과 국법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므로 그것을 거절했노라고 ‘역(逆)폭로전’을 펼치고 나섰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요, 갈수록 태산이다.
우선 중앙일보에 묻고 싶다. 박지원 전공보수석이 중앙일보 보도에 불만을 품고 편집국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민간기업인 신문사의 인사에 그처럼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무슨 약점이 있기에 지금까지 입을 다물었는가. 그런 사람이 문화관광부 장관에 취임하는 것을 또 어째서 수수방관했다는 말인가. 그런 자세로 어떻게 ‘언론자유 수호 투쟁’을 하겠는가. 다른 언론사들이 ‘동업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느라고 별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홍사장의 구속을 ‘언론탄압’이라고 비난하는 데 대해 싸늘한 냉소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중앙일보사 임직원들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에 묻는다.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사실인가. 박장관은 지금 당장 해명해야 한다. 만약 중앙일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박장관은 직권 남용의 책임을 지고 모든 공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중앙일보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중앙일보는 법률적으로 응징을 받아야 마땅하다. 박장관이나 정부가 진상 밝히기를 외면한다면 중앙일보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와 중앙일보가 서로를 향해 침을 뱉는 이 진흙탕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진실밖에 없다. 나는 아무리 추악하더라도 그 진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유시민(시사평론가)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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