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원로의 한 사람으로서 최근 긴장상태가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의 위기를 좌시할 수 없어 그동안 숙고해온 몇가지 생각을 이 편지에 담아 전달하고자 합니다.
나는 대통령 재임중 남북이 당면한 주요 사안에 대해 김일성 주석님과 의견을 교환한 바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님은 1985년 9월 내게 특사로 보낸 허담 노동당 비서를 통해, 만일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민족 모두가 파멸하게 될 것이므로 최대 당면과제는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나는 장세동 안기부장을 평양에 보내 김일성 주석님에게, 허담비서를 통해 말씀해주신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생각을 전해 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과 북이 서로 무력사용을 포기하고 불가침 선언을 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최우선적 과제는 전쟁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를 위해 남북간에 실현이 가능하고 손쉬운 일부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현상황에서 가장 쉽고 실현가능성이 높은 사안은 남북간의 대화 및 각 분야에 걸친 교류를 활발히 추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양한 비정규 대화선(對話線)의 가동입니다. 나는 남북간의 불신과 오해의 증폭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대화의 창구가 열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조국이 분단된 이래 북측은 남측에 대해 각종의 참혹한 도발행위를 저질러 온 것에 대해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남측도 그런 도발의 동기를 조성하는데 전혀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포용해야 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 보복하지 않고 단 한 사람의 정치적 희생도 내지 않으며 평화적으로 합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업(聖業)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총비서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 자연인으로서, 그리고 한 자유인으로서 남북이 보복과 희생 없이 합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총비서님과 만나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총비서님의 건승을 빕니다.
1999년 7월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전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