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의문점 남은의문점]제보자 공개됐지만 의혹증폭

  • 입력 1999년 10월 29일 03시 12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폭로한 ‘언론대책문건’ 작성자가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라는 사실에 이어 제보자가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로 밝혀지면서 이른바 ‘언론대책문건’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제보자 공개로 이번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들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내용의 진위도 상당부분 밝혀졌다.

먼저 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의 측근으로부터 제보받았다고 주장해왔던 정의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정의원은 제보자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의도된 거짓말’을 했다고 변명했다.

국민회의는 중앙일보 간부가 문건 작성에 개입됐고 제보자도 중앙일보 간부라고 주장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을 중앙일보와 정의원이 합작한 ‘기획공작’으로 몰아가던 국민회의의 의도 자체가 무너진 셈이다.

그동안 문건 작성자뿐만 아니라 제보자도 중앙일보 사람이라는 오해를 샀던 중앙일보는 일단 누명을 벗게 됐다.

제보자가 밝혀짐에 따라 정의원이 이 문건을 청와대 보고용 문건으로 믿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또 문기자로부터 문건을 1차로 받았던 국민회의 이부총재가 이 문건을 토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는지 여부가 의문점으로 남게 됐다. 제보자인 이기자가 문건을 이부총재 사무실에서 가져왔다는 사실을 정의원에게 알렸다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이 문건이 청와대에 보고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정의원은 “이강래(李康來)전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작성해 이부총재를 통해 청와대에 보고됐다는 이기자의 얘기를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기부에 오래 근무했던 정의원은 제보를 받더라도 이를 재확인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는 점에서 그가 이를 청와대에 보고됐다고 쉽게 단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 이부총재는 이 문건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 보고여부는 앞으로 확인을 거쳐야 할 최대 쟁점이다.

정의원과 한나라당은 “이부총재가 이강래전수석과 (문기자가 작성한 문건을 토대로)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만들어 김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에 따라 언론대책이 시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부총재와 이전수석이 시나리오를 만든 사실과 김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입증할 만한 어떤 증거도 제시된 게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문기자는 28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문건은 독자적으로 만들어 이부총재에게 1부만 보냈으며 왜 정의원에게 흘러갔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기자의 경우도 개인적으로 문건을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1년 가까이 국내에 머물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국내 언론상황을 전문가 수준으로 상세하게 파악해 문건을 만들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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