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파문 확산]여야수뇌부 진실 왜 감추나?

  • 입력 1999년 10월 31일 19시 59분


《이른바 ‘언론대책문건’파동과 관련,여야 수뇌부가 현재 드러난 실상보다 훨씬 상세한 진상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략적(政略的) 판단에 따라 이를 은폐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국민 인식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민회의-청와대, 文기자 통화녹취록 "있다 없다"갈팡질팡▼

‘언론대책문건’ 파문이 야기된 이후 여권이 보인 행태 가운데 가장 의혹을 많이 남기고 있는 부분은 ‘문서작성과정’. 이 대목과 관련해 여권 관계자들이 사건 발생일, 즉 25일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폭로한 이후부터 상당히 근거가 있는 것을 전제로 여러가지 얘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그동안 계속 제기됐던 문건을 작성자인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로부터 전달받은 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가 ‘중앙일보 간부와의 상의’ 부분과 관련된 녹취록 확보 주장을 놓고 갈팡질팡한 점. 이부총재의 이같은 행태를 둘러싸고 정치권 안팎에선 “뭔가 말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오히려 많이 나오고 있다.

이부총재뿐만 아니라 청와대 관계자들이나 여권 핵심인사들 입에서도 비슷한 얘기, 심지어 문기자가 상의했다는 중앙일보 간부들의 실명(實名)까지도 거론됐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그렇다면 여권 수뇌부는 뭔가 확실한 진상을 알고 있지만 다른 이유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이 문제는 또 폭로 직후에 여권 내에서 제기됐던 ‘문건이 여권 내 여러군데 전달됐다’는 얘기와도 직간접으로 연계되는 성격을 띠는 대목.

또한가지 여권의 속성상 고위 관계자들이 무책임하게 근거없는 얘기를 유포시키기 힘들다는 상식론을 감안하면 사건 초기에 종합적 판단없이 사실관계가 드러나는대로 공식 비공식으로 얘기하다가 뒤늦게 보다 높은 차원에서 결정된 ‘가이드라인’에 의해 조율되는 과정에서 발언번복 등의 행태가 뒤따랐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호기자〉leejaeho@donga.com

▼한나라당 李총재, 작성자 알고나서도 강공기조▼

한나라당은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이 문건을 폭로한 이후 작성자, 제보자, 돈제공 사실 등을 여권이 먼저 공개하면 이를 해명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여권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언론대책문건’ 폭로과정에 깊숙이 개입했거나, 적어도 그 과정에 대해 거의 ‘전모(全貌)’를 알고 있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총재는 제보자 문제와 관련해 폭로 직전 정의원으로부터 개략적인 내용만 보고받았을 뿐 이도준(李到俊)기자가 지난달 28일 자신을 찾아와 스스로 제보자라고 밝힐 때까지는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기자가 “정의원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해 정의원이 이기자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권은 이기자가 평소 이총재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기 때문에 지난달 28일에야 그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또 문건 작성자가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로 밝혀지면서 정의원의 주장의 기초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이총재가 제보자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대여 강공기조를 고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정의원은 29일 총재단회의에서 이기자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이번 문건 제보와는 상관없이 돈을 주었는 데 여권에서 이를 역공작에 이용하려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권에서 이를 역이용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돈 준 사실을 먼저 공개하지 않고 은폐한 것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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