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 파문 정치권 반응]여야 미묘한 전략수정

  • 입력 1999년 11월 3일 20시 03분


“진실이 가장 중요하다.”

‘언론대책문건’의 사태수습에 대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보좌진에게 “투명하게 진실을 밝히라”고 강조했다는 전문이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도 자신있다는 얘기같기도 하고 여론에 떼밀려 결정을 내리지는 않겠다는 암시가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 이종찬 국민회의부총재의 거취문제를 둘러싸고 2일 오후까지만 해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듯하던 당과 청와대 쪽의 분위기가 3일 ‘검찰수사 후 거취결정’이란 유보적 분위기로 돌아선 것도 김대통령의 이런 입장 표명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옷로비사건’ 발생 직후 청와대측이 김태정(金泰政)당시 법무부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던 당 일각의 기류와 달리 ‘검찰수사 후 조치’를 강조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같은 여권핵심부의 기류에는 이부총재를 ‘희생’시켜야 할 만큼 상황이 반드시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계산도 엿보인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검찰수사가 끝나면 결국 야당이 더욱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좀더 근저에는 이부총재의 거취문제를 둘러싼 당 안팎의 기류가 권력암투 양상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와 정권교체의 ‘공신’중 한사람인 그를 정리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 부담’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 이부총재측은 3일 “대통령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며 당직사퇴나 출당 등 극단적인 방향으로 거취문제가 쉽게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를 밝혀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실체적 진실’의 규명에 변죽만 울렸던 한나라당도 이날을 기점으로 전략변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비공개로 열린 언론대책위원회에서 “이부총재의 국가정보원 문건 무단반출사건 등으로 상황이 야당에 유리하게 반전됐다”며 여권이 이부총재를 희생시키는 이른바 ‘도마뱀 꼬리 자르기’에 나설 가능성을 오히려 경계하고 나섰다.

이날 회의의 결론은 “하루하루 언론보도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본질’을 따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대통령의 언론장악 책임의 소재를 따지는 등 직격탄을 날려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여야는 이날도 ‘사태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총론적 당위성’만 소리높여 외쳤다.

그러나 여야 모두 여전히 ‘진실’을 자신들에게 정략적으로 유리한 의미로 해석하는 자세다. ‘문건작성과정’을 밝혀낼 의지나 ‘각론적 방법’에는 여야 모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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