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문건 유출 파동]궁지몰린 이종찬씨 어디로…

  • 입력 1999년 11월 3일 23시 03분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의 정치적 입지가 ‘강진(强震)’을 만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는 상황이다. 이미 검찰로부터 소환통보를 받아놓고 있고 국가정보원에서는 문서반출로 이부총재측 조사에 나섰다.

이같은 상황에서 여권 일각에서는 ‘이부총재 밀어내기’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조사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여권내 기류▼

국민회의 내 일부 강경파들은 이부총재의 책임론을 강조하며 이부총재의 당직사퇴 등을 거론한다.

한 고위관계자는 3일 “이부총재의 행위는 위법성과 별도로 도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부총재와 경쟁관계에 있는 당내 인사들이나 측근들은 이부총재의 ‘낙마(落馬)’가능성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민회의 온건파, 이부총재에게 호의적인 당직자들은 이부총재를 옹호하는 분위기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부총재의 당직사퇴를 거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사건수사 결과가 나온 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도 “사건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는데 정권교체의 공로가 있는 사람을 함부로 잘라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의 입장▼

국가정보원은 “이부총재의 문건 반출을 승인해준 일이 없다”고 발표한데 이어 3일 이부총재의 최상주(崔相宙)보좌관을 불러 문서유출 경위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이같은 ‘엄정조사’ 분위기와는 달리 최보좌관에 대한 이날 국정원 조사에선 이부총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만한 단서를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현재까지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한 상태.

국정원 조사에서 최보좌관은 “반출한 문건은 ‘국회 529호실 사건’ 등 이부총재가 한나라당에 의해 고발돼 있는 사건의 파일로 대응용으로 가져온 것일 뿐 비밀도 아니다”는 주장을 거듭했고 국정원측도 상황을 이해했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설명.

이에 따라 전날 ‘사법처리 불사론’까지 나왔던 청와대쪽 기류도 급격히 달라진 것 같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부총재의 원장 퇴임 후에도 최보좌관은 인계인수 때문에 한달반 가량 국정원을 다니며 원장실에 보관했던 문건을 가지고 갔는데, 당시 문건반출에 대해 이부총재가 양해를 구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보좌관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이부총재와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움직임▼

이부총재는 검찰 조사는 받겠지만 그에 앞서 여권내 조율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듯하다. 이부총재의 한 측근은 3일 오후 “오늘은 검찰출두가 어렵겠다”며 “여권 전체가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건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부총재가 이처럼 ‘시간끌기’를 하고 있는 것은 여권 내부에서 “이부총재가 무슨 내용을 알고 있는지, 과정이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도대체 당에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부총재도 자신의 검찰 출두가 ‘언론대책문건’의 폭로 당사자로 피고소인인 정형근(鄭亨根)의원에 대한 압박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양기대·윤승모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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