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의 4일 기자회견은 당초 진상규명에 상당한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결과는 ‘실망’ 뿐, ‘언론대책문건’ 사태의 본질부분인 문건작성과정은 다시 베일 뒤로 가려져 버리고 의혹은 고스란히 남은 형국이 됐다.
이부총재측은 당초 문건작성과정에서의 ‘제삼의 인물 개입’ 사실을 회견에서 밝히려 했으나 끝내 밝히지 못했다.
▼ 본질규명 열쇠는 녹취록 ▼
이부총재가 이날 회견을 갖기로 한 것은 여권 내부의 조율과정에서 ‘투명한 진실공개’라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시를 수용, “사실대로 밝히자”고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 그러나 회견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부총재는 이날 본질의 다른 축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건의’ 부분에 대해 “읽어보기 전에 탈취당했다”며 가능성자체를 차단했다. 문건의 작성과정과 청와대 건의여부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히 연관돼 있는 문제.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가 작성한 문건이 이종찬부총재에게 전달됐고, 이 문건은 다시 다듬어져 김대통령에게 보고되고 그대로 실행됐다는 게 한나라당 주장이다. 따라서 작성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이같은 한나라당 주장은 그대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성과정에 ‘다른 변수’가 개입됐다면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만약 녹취록의 내용대로 ‘제삼의 인물’, 즉 다른 중앙일보 간부가 개입됐다면 문건의 유통과정도 다를 가능성이 많고, 청와대 보고 문제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따라서 두 부분이 함께 석명(釋明)되지 않는 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부총재가 이날 회견에서 지난달 26일 문기자와 통화한 녹취록 문제와 관련해 “여기에서 말하기보다는 검찰에서 얘기한 뒤 나중에 소상히 밝히겠다.
▼ 與圈 파문수습 시도하는듯 ▼
검찰에 가서 모든 문제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는 얘기만 함으로써 공은 검찰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물론 이같은 이부총재의 회견은 여권 내부의 깊숙한 의견조율을 거친 것이다. 이 조율의 내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적어도 정치적 측면에서는 이번 파문의 수습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게 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인 듯하다.
3일 이후 여권의 대응이 ‘정면대응’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단적인 예. 이날 이부총재의 회견이나 검찰출두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문제는 여권의 자신감이 이른바 여야의 소모적 난타전 속에서 인식의 혼란을 겪고 있는 국민을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는 야당과의 정쟁(政爭)에서 ‘불리하지 않은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