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언론대책문건’을 폭로한 이후 여야는 무절제한 폭로전과 막말공방, 맞고소 고발, 민생외면과 국회파행 등을 거듭하며 “갈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여야가 이처럼 불퇴전의 결의를 보이는 데는 물론,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게 사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책임의식’마저 팽개치는 행태를 드러냄으로써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권이 문건폭로 초기 확실한 근거도 없이 ‘중앙일보 커넥션’을 주장하고 나섰다가 사과한 것이나 한나라당이 처음부터 문건작성자로 이강래(李康來)전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목한 것 등이 단적인 예. 바로 ‘여론전에서는 선제공격이 득책(得策)’이란 발상의 결과다.
문건파동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구성협상이 ‘문건전달과정’(여)과 ‘언론장악음모’(야)로 맞서 초장부터 합의점을 못찾는 것도 본질규명보다는 상대방에 타격을 주려는 정략적 의도가 앞서 있기 때문이다.
특히 4일 부산집회에서 한나라당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부은 이후 여야는 아예 ‘벌거벗은’ 모습으로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빨치산’ 발언에 맞서 여권이 ‘세풍’ ‘총풍’ 수사과정에서 흘려온 ‘파트너 배제론’을 다시 꺼내들자 야당은 장외로 뛰쳐나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야 정치권 내부에서 “이래서는 여고 야고 함께 공멸한다”며 ‘타협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 대한 여권의 ‘국정운영 파트너 배제론’이나 한나라당의 ‘색깔론 제기’ 등에 대해서도 “지나쳤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또 그 연장선상에서 “문건파동이 정리되면 여야총재회담으로 현안을 일괄타결지어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야가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여야 수뇌부가 한치도 스스로 물러설 수 없다는 사고(思考)에 사로잡혀 ‘제로섬 게임’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 대화론자들의 주문도 “우선 김대통령과 이총재부터 거시적 안목에서 결국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런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결론으로 모아진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