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의 계기가 된 것은 정의원이 4일 한나라당 부산집회에서 “김대중씨는 서경원의 밀입북 사실을 불고지하고 공작금을 받았다”고 발언한 것. 국민회의는 고발장에서 이 발언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명예훼손 혐의 유무를 밝히기 위해서는 정의원이 언급한 서 전의원 밀입북 및 불고지 사건의 사실 여부를 가려내야 한다.
따라서 법논리적으로 서전의원 사건에 대한 재수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 이 사건이 그동안 고문 및 조작 시비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논란과 시비가 이어져온 점을 감안할 때 차제에 사건의 진상을 분명히 규명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러나 법논리만으로 재수사의 배경을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검찰이 “서전의원 사건 등은 10년 전 수사로 이미 확인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재수사를 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이 재수사에 나선 것은 ‘대통령이 고소한 사건’에 대한 검찰 스스로의 ‘의지’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이 사건을 생각하면 억울함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말할 정도로 이 사건에 대한 ‘한(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 사건을 통상의 명예훼손 사건과는 달리 공안부에 배당한 것이나 서전의원이 4월 정의원을 명예훼손과 고문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들 이 사건과 병합해 수사하기로 한 것도 검찰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정치권과 검찰이 ‘정의원 퇴출’에 본격 착수했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은 정의원이 연루된 언론대책 문건 사건의 수사방향이 정의원에게로 집중되는 시점에서 이 사건 재수사를 착수했다.
재수사의 파장은 상상 외로 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 사건 수사는 수사 결과에 따라 김대통령과 정의원 등 어느 한쪽의 ‘상처’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긴장도를 더하고 있다.
서전의원 사건이 재수사에서도 사실로 밝혀지면 고발인인 국민회의와 김대통령은 무고혐의를 피할 수 없다. 반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질 경우 당시 수사선상에 있던 검찰관계자와 안기부 대공관계자 등의 처벌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 검찰 조직도 이미 수사해 끝낸 사건을 다시 수사하고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전현직 검사들을 직접 조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 고위간부는 “20세기 마지막 대사건이 될 것”이라며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