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밀레니엄 쇼' 여서는 안된다

  • 입력 1999년 12월 29일 19시 58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어제 송년담화 주제는 ‘국민대화합을 통한 희망의 새천년 열기’로 요약된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과오에 대해 속죄하고 결별하며 국민 모두가 서로를 용서하고 감싸안아야 새천년 ‘전진하는 한국’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그는 화합의 즉각 조치로 대규모 가석방 등 100만명 구제조치를 내놓았지만 그보다는 정치권의 화해와 화합에 더 큰 비중을 둔 것 같다.

김대통령은 “여야가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화합하고 협력하는 큰 정치를 열어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문제가 된 사건들에 대해서도 원칙있는 처리를 통해 최대한 관용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문제는 실천이다. 국민대화합의 전제로 여야 정치권의 화해를 강조한 경우는 여러번 있었으나 대부분 말로 끝났지 실행된 것을 우리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 초로 예정된 여야 총재회담은 진정으로 정치권 화합의 새 디딤돌이 될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새해 총재회담에 대해 국민은 사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 있다. 어렵사리 대화의 장을 만들고도 헤어지면 금방 딴소리를 하고 오히려 그전보다 더 드잡이로 벼랑 끝까지 가는 정치의 모습을 우리 국민은 수도 없이 보아왔다. 알쏭달쏭한 ‘대화록’을 던져놓았다가 이면합의가 있네 없네 뒷말이 많은 경우도 적잖았다. 새천년을 맞아 국민에게 희망을 주자며 갖는 대화이니 그럴 리 없겠지만 또 구태(舊態)를 되풀이한다면 정치,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환멸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여야 총재가 회담장에 앉기도 전부터 걱정이 앞서는 것은 대통령은 물론 야당총재도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가 국가발전의 장애가 되어왔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원인을 ‘내탓’ 아닌 ‘네탓’으로 돌리며 상호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에서 신뢰가 발붙일 리 없다. 더구나 이번 회담은 4월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루어진다. 선거용 ‘기선잡기 회담’이 되지않겠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국민의 걱정을 불식시키는 길은 한가지다. 대화를 대국민 과시용 ‘쇼’로 끌어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장밋빛 희망에 찬 말의 합의를 도출해보겠다는 욕심보다 새로운 천년기 나라의 미래를 위해 현 정치권이 어떻게 긴 호흡을 맞춰야 하는지부터 토론해보라는 것이다. 여야 정치지도자 상호의 신뢰와 화해는 물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부터 논의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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