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는 4일 자신의 전국구 공천헌금 발언을 둘러싼 당내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천헌금을 받지 않겠다는 소신을 거듭 확인했다. 이원창(李元昌)총재특보는 이날 “이총재는 공천과 관련해서는 단 한푼도 요구하거나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공천헌금을 수수하면 과거 부패정치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총재의 기본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공천과 관련해서 돈을 주고받는 것은 ‘3김정치’ 청산과 새 정치를 추구하는 이총재의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은 이날 “전국구 후보들에게 공천헌금을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당을 위해 스스로 특별당비를 내는 것은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당비를 내는 것은 당원의 권리이자 의무”라면서 “특별당비의 입출금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다른 당직자들도 “돈을 내는 사람만을 전국구 후보로 공천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재력 있는 사람들의 특별당비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헌금을 대가로 공천 뒷거래를 해서는 안되지만 ‘자발적으로’ 내는 특별당비는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총재는 지난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총선자금 조달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시에도 돈을 직접 만지지 않았던 이총재는 대선 패배 후 주변사람들에게 “선거 직전 한 재벌기업의 기조실장이 찾아와 ‘5대 재벌이 각각 100억원씩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했으나 이를 거절했다”는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다른 당직자들이 대선 자금을 조달했고 서상목(徐相穆)의원은 이른바 ‘세풍자금’을 받았다고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도 당의 선거자금 조달은 97년 대선 때와 비슷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가 직접 나서서 공천헌금을 수수하지는 않겠지만 사무총장 등이 특별당비 모금 등을 ‘대행’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이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은 3개월에 한번씩 지급되는 국고보조금 20여억원과 총선에 따른 국고보조금 103억원이 사실상 전부다. 따라서 특별당비를 비롯한 별도의 자금을 모으지 않고서는 총선을 치르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게 당직자들의 솔직한 설명이다.
‘돈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이총재의 이상(理想)과 한나라당의 현실(現實)이 어떻게 절충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