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법 조항은 94년 제정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의 ‘단체의 선거운동 금지’규정. 당초 이 조항을 만든 배경에는 갖가지 혼탁 부정 등 우리 선거사의 ‘얼룩진 과거’가 깔려 있다. 즉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된 시민단체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유령단체’들이 선거판에 뛰어들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예상되는 문제점’ 때문에 포괄적으로 금지한다는 게 취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과거 자유당 시절 ‘백골단’ ‘땃벌떼’를 예시하기도 하고 “돈과 권력을 쥔 여권이 사익적(私益的) 목적으로 단체를 이용할 경우 선거분위기가 매우 위험해진다”는 ‘현실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시민단체 '표현의 자유 보장'
그러나 시민단체 등 개폐론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제 우리의 민도(民度)가 그 정도는 넘어섰다는 것이고, 따라서 세계 어느 나라도 규제하지 않는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 ‘악법’과의 투쟁은 정당하다는 ‘시민 불복종론’까지 제기하고 나설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헌법재판소는 시민단체의 위헌 소송에 대해 △사회적 위험과 비용이 클 경우 표현의 자유도 일정부분 규제할 수 있고 △사회단체는 정치조직인 정당과는 그 활동 취지가 다르다는 등의 이유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이 헌재의 결정조차 존중하지 못하겠다는 시민단체들의 입장이고, 이들의 입장에 대해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국민이 공감을 보낼 만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여야 3당이 모두 당론으로 개정불가 방침을 정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야 의원들 사이에 개폐 주장이 고개를 드는 것은 바로 ‘노도(怒濤)’와 같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 法개정 동조론
정치권 일각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된 시민단체에 대해 ‘제한적으로’ 선거운동을 허용하자는 절충론이 대두되는 등 변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시민단체들의 저항을 법과 물리력만으로 제어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낙선운동’이라는 불법행위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는 정치권과 정부가 이번 총선에서 어떤 자세와 입장으로 이 문제에 대처할지가 향후 선거분위기 형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전망이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