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협상 내용 비판론]"고양이에게 생선 맡겼으니…"

  • 입력 2000년 1월 14일 19시 40분


“여야는 이번 선거법협상에서 철저히 ‘나눠먹기’로 일관했다. 문자 그대로 게리맨더링의 ‘전범(典範)’을 보여준 셈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으니….”

여야가 잠정적으로 합의한 선거법 협상내용이 차츰 드러나면서 당초 정치권이 명분으로 내세운 정치개혁을 선거법에 담기는커녕 여야 각당과 특정의원들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여야는 우선 현행 7만5000∼30만명으로 돼 있는 인구 상하한선을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당초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8만5000∼34만명으로 인구기준을 상향조정키로 방침을 정했으나 이로 인해 지역구가 없어지는 의원들의 반발과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닥쳐 ‘없던 일’로 돼버렸다.

상한선 현행유지로 인구 30만명을 가까스로 넘은 부산 동래갑을과 부산 남갑을이 통합위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여야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는 인구 30만명을 넘기지 못한 부산 남갑을을 의식해 인구기준일을 지난해 10월로 앞당겼다.

또 인구하한선(7만5000명)유지로 협상당사자인 자민련 이긍규(李肯珪)원내총무의 지역구인 충남 서천과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정책위의장의 지역구인 경북 의성을 포함해 전북 임실-순창 부안 고창 등 인구감소에 따라 통폐합대상이었던 선거구가 대거 살아났다. 이 때문에 국회 안팎에서는 이번 지역구 조정을 놓고 ‘긍규맨더링’ ‘창화맨더링’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무리수로 여야는 행정구역 위주로 선거구를 나눠야 하는 대원칙에 따라 당연히 분구대상이었던 경기 하남-광주, 경기 오산-화성, 제주 서귀포-남제주, 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 등 복합선거구도 그대로 유지키로 하는 등 위헌소지의 가능성까지 남겼다.

여야는 민간인을 포함시켜 선거구획정위를 구성하도록 돼 있는 현행 선거법조항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무시한 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구획정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같은 행태 때문에 “정치인들 스스로 법을 안지키면서 어떻게 낙선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들에 법을 지키라고 주장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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