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목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김대통령이 진행상황을 잘 알았으면서도 17일 재협상을 지시했다면 ‘책임 떠넘기기’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17일 “합의사항에 대한 개략적인 보고가 있었을 뿐 협상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인구하한선은 최소한 8만명은 돼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했으나 반영이 안됐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원내총무도 “김대통령에게 선거법 협상의 세세한 세부사항을 보고한 적이 없다”고 전제한 뒤 “선거법 협상내용 중 잘못된 부분을 대통령이 시정토록 지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밝혔다.
정무수석비서관실의 한 관계자는 “박상천(朴相千)국민회의원내총무측으로부터 ‘15일 단독처리를 위해 의석이 부족하니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남궁진(南宮鎭)정무수석도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왔으나 남궁수석은 이를 거부했다”면서 “남궁수석은 사전에 내용을 잘 몰랐다”고 강조.
박총무는 이날 기자들에게 “대통령은 선거법 합의의 문제점을 세세히 알지 못했다”며 “오늘 청와대에서 지시한 6개 재협상 리스트도 내가 작성해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상 진행과정을 보고했으나 문제점보다는 의석수 부족으로 협상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어려움을 주로 보고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김대중총무-박상천수석부총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뛴다. 이사철(李思哲)대변인은 “도농복합선거구 지역인 경주 원주 순천 군산 4개 지역구제 문제에 대해서도 박총무가 김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협상에 임했다”고 주장했다.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는 “매번 박총무가 청와대와 전화통화를 했으며 김대통령은 협상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총무는 “특히 여당측 입장이 권역별 정당명부제에서 전국 비례대표제로 바뀔 때 박총무가 ‘청와대가 강경하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고위관계자는 “DJ가 협상상황을 얼마나 알았느냐의 여부를 떠나 협상 일방의 최고책임자가 협상이 끝나자마자 ‘나는 몰랐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기본’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