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첫 총선이라는 시대사적 의미는 온데간데 없고 ‘기초질서’마저 흐트러지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출마자들은 출마자들대로 갖가지 편법을 동원하는 ‘틈새전략’에만 골몰하는가 하면 선관위는 선관위대로 무력감을 호소하는 등 세밑 분위기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구체적 선거전략 못세워▼
우선 출마자들은 선거법 처리지연으로 공천은커녕 선거구마저 확정이 안돼 선거운동 전략을 세울 수 없다고 볼멘소리다. 게다가 각종 시민단체들의 공천부적격자 명단 발표의 후유증으로 경쟁자들에 대한 음해와 인신공격이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려 지역분위기가 벌써부터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이협(李協·전북 익산을)의원은 3일 “선거를 70일 정도 남겨놓고 지역구 활동을 못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탄했다. 수도권의 한 현역의원도 “선거를 여러 차례 치렀지만 이번 만큼 갈피를 잡기 어려운 선거는 처음인 것 같다”면서 “이같은 혼란은 결국 유권자의 바른 주권행사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관위의 고민도 이들에 못지 않다. 중앙선관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 여파 탓인지 이번 총선에는 불법 선거운동 단속도 느슨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가 만연돼 있다”고 전하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금품제공,각종 행사에 찬조금 주기 등 각종 불법 편법 선거운동이 판을 치고 있다”며 개탄했다.
이런 혼란의 ‘틈새’를 파고드는 각종 편법 선거전략도 어느 때보다 다양하다. 특히 낙천운동의 여파로 인한 후보 음해 양상은 위험수위를 넘어서는 분위기다.
▼분위기 틈타 편법 기세▼
충남지역의 한 출마예상자는 경쟁상대인 현역의원이 시민단체의 공천반대인사 명단에 포함된 사실이 실린 신문기사를 대량 복사해 살포했다. 총선연대 명단에 오른 인천지역의 한 현역의원은 “상대진영에서 이미 ‘명단에 오른 사람은 중앙당에서 공천을 안준다더라’하는 소문을 광범위하게 퍼뜨렸다”면서 “이번 설 연휴에는 이를 해명하느라 발이 부르트도록 다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단체 선거운동 등 선거법이 문제시되면서 정치에 입문하려는 신인들에게 가혹한 현행 선거법 조항에 대한 반작용도 심각하다. 이는 현역 의원들의 경우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얼마든지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신인들은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마저 봉쇄당하고 있기 때문. 즉 웬만한 홍보활동은 대부분 사전선거운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꼼짝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이 때문에 자신을 알리려는 정치 신인들의 갖가지 편법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서울 영등포갑 공천신청자 권기균(權奇鈞)씨는 “2월12일까지 후보자 명의의 여론조사가 가능하다”는 선거법 조항에 착안,지난주 자신의 이름을 새긴 설문조사 엽서를 돌렸다. 민주당의 서울 서초갑 공천신청자 배선영(裵善永)전재경부과장은 단속시비를 피하기 위해 이름을 뺀 채 자신의 저서 광고지를 신문 삽지(揷紙)로 제작,지역 내에 계속 배포하고 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