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수사 딜레마]검찰 칼은 빼들었지만…

  • 입력 2000년 3월 6일 19시 29분


검찰이 16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후보자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검찰이 선전포고와 함께 칼을 빼들 태세를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3월28일을 20여일 이상 앞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역감정을 이용해 표를 얻으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이는 등 총선 분위기가 혼탁해지고 있기 때문.

검찰은 각종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 유발행위에 대한 ‘엄단’을 발표해 왔지만 이들에 대한 단속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우선 현행 선거법은 지역감정 유발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별도의 조항을 두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각 사례마다 형법상 친고죄인 명예훼손이나 선거법상의 후보자 비방죄, 허위사실 공표죄 등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죄가 성립하기 위해 충족돼야 하는 ‘구성요건’이 까다로워 일반인이 통상적으로 느끼는 ‘지역감정 조장’과 이에 대한 ‘형사 처벌’은 거리가 있다.

김윤환(金潤煥)의원 등의 지역감정 발언이 수사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을 적시해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공표한 경우’라는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기 때문.

선거를 앞둔 지역감정 유발사건으로는 92년 12월 대선 직전에 발생한 ‘초원복집 부산 기관장 모임 도청사건’이 원조(元祖)다.

검찰은 대통령 선거법 36조의 ‘특수 이해관계인의 선거운동 금지’ 조항을 들어 김기춘(金淇春)전법무부장관을 기소했으나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공소가 기각됐다.

새정부 들어 검찰은 지역감정 조장에 대한 ‘기획수사’활동을 펼쳤지만 98년 6·4지방선거에서만 김태호(金泰鎬)한나라당 의원 등 겨우 6명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당시 김의원은 한나라당 울주군수 후보 추대대회에서 상대방 후보에 대해 “호남 출신으로서 고향을 감추고 영남사람 행세를 하는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했다가 후보자 비방혐의로 기소됐다.

1심 법원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구청장 후보 등 나머지 5명은 모두 유죄가 확정됐다. 발언 내용은 “여당의 서울시 구청장 후보 25명 중 22명이 호남 출신”이라거나 “무소속 후보가 선거에서 호남당의 지원을 받는다”는 여당 비방과 광주시장 후보에 대해 “YS 인맥, 현철 인맥”이라고 주장한 경우 등이다.

특히 이번 선거의 경우 영남 출신 후보들이 지역감정 유발 발언을 많이 할 가능성이 커 검찰이 잘못 뛰어들었다가는 ‘표적수사’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지역감정 자체가 법적 용어가 아닌 사회적 용어이므로 검찰보다는 시민단체와 언론이 지역감정 유발자에 대한 추방에 앞장서야 한다”며 “검찰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