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민국당의 ‘영남후보론’에 잔뜩 긴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지역편중 인사론’을 전면에 내세워 연 닷새째 민주당을 향해 집중 포화를 퍼붓는 것부터가 지역감정을 둘러싼 전선이 복잡하게 형성돼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한나라당은 JP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향해 ‘지역감정 책임론’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말인즉 옳다’며 은근히 양측의 공방을 부추겼다.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충청권에서 자민련을 겨냥해 “충청도가 곁불이나 쬐며 명예와 자존심을 버려야 하느냐”며 충청 정서를 자극하고 나섰다.
하지만 민국당이 5일 ‘영남정권 재창출론’을 제기하자 한나라당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자칫 ‘영남분열’로 이어져 총선에서 치명상을 입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나라당측은 ‘DJ 2중대론’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민국당을 찍으면 DJ에게 득이 된다”는 논리로 민국당을 압박 중이다.
반면 민국당은 ‘영남정권 재창출론’을 제기하며 한나라당을 ‘사이비 영남당’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다. 주적(主敵)이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민국당의 한 관계자는 “민국당이 승부를 걸 수 있는 곳은 영남뿐”이라며 민국당이 지역감정에 승부를 걸고 나선 배경을 숨기지 않는다.
충청권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거센 공세에 직면한 자민련은 민국당의 ‘영남정권 재창출론’으로 영남진출을 위한 ‘틈새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조짐이 나타나자 민국당 김윤환(金潤煥) 김광일(金光一)부위원장을 ‘퇴출 대상’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입장에도 복선이 깔려 있다. 표면적으로는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내심은 ‘1여(與) 다야(野)’구도를 즐기는 분위기다. 이미 호남의 경우 지역감정이 사실상 ‘완성’돼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4자필승론’의 논리에 맞아떨어지는 듯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데 대해 당직자들은 “자칫 호남표가 결속되는 양상이 표면화될 경우 거꾸로 영남표를 결집시켜주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며 신중한 자세를 지키고 있다.
모든 정파가 지역감정 문제에 관한 한 이용-역이용의 복합구도 속에서 “욕 먹어도 표는 온다”는 식으로 각개 약진을 벌이고 있는 게 요즘 정치판의 모습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