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경제 회복을 지원하겠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95년 3월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베를린선언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집권 2년차를 지나는 시점과 통일국가를 이뤄낸 독일의 베를린이라는 장소, 대북 지원과 협력 의사를 강조한 제의 내용 등 놀랄만큼 유사점이 드러난다.
YS는 95년 3월7일 베를린 황태자궁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우리는 북한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에 곡물을 비롯해 필요한 원료와 물자를 장기저리로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었다. 이 같은 곡물제공 용의표명은 95년6월의 쌀 15만t(1850억원) 대북지원으로 이어졌다.
물론 차이점도 없지는 않다. 당시 YS의 경우 북한의 핵개발 위협과 이인모(李仁模)씨 송환을 둘러싼 논란으로 대북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많았고 북-미, 미일 관계도 지금과 달랐다. 그 후 YS의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게 된 것은 베를린선언에 이어 조급하게 추진한 쌀회담의 실패로 빚어진 씨아펙스호 인공기 게양사건(95년6월29일), 삼선비너스호 선원억류(95년8월2일) 등이 결정적 이유였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