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지역감정을 ‘조장’해서는 안 되며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 자체는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이 당위성과는 전혀 별개로 박권상 KBS 사장, 노성대(盧成大) MBC 사장, 윤세영(尹世榮) SBS 회장 등 지상파방송 3사 최고경영자들이 ‘결의’한 것은 몇 가지 본질적인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원천 봉쇄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용훈(李容勳)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박사장 등 방송협회 회장단을 만나 후보자들의 국민분열 조장 발언 등 공정선거 저해 행위의 보도 자제 협력을 요청했고, 협회 회장단은 이를 수락해 현장에서 실무자에게 곧장 발표문을 작성토록 해 발표했다.
‘외부 요청’으로 표현의 자유 문제와 편집권이란 언론의 핵심 부분을 방송사 사장들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본질적 문제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방송학자들의 지적이다.
김승수 전북대교수는 “미국에서도 국가 사회적으로 위험한 경향에 대해서는 보도를 자제하거나 우회적으로 하지만 이는 대부분의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MBC 보도국의 한 기자는 “방송사별 총선보도 원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되는 사안인데 방송협회 차원에서 별도로 결의할 필요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효성 성균관대교수는 다른 각도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은 소극적으로 보도를 포기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협회의 이번 결의는 국민을 낮춰보는 계몽주의적 언론관에서 비롯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회사원 장모씨(45)는 “현실적으로 지역감정이 존재하는 것이며 이를 보도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확대 재생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민을 ‘교육’할 수 있다는 전근대적 언론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어른에게 “이 영화는 나쁘니 아예 보지 말라”고 지도하려는 발상이란 것이다. 자율과 양심으로 판단해 사실을 보도하는 것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허엽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