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시기적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9일)과 북-미 뉴욕회담(7∼15일) 직후, 남한의 총선(4월13일)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다양한 계산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지난해 9월2일에도 “서해상의 우리 영해 안에 제멋대로 설정한 미군측의 강도적인 북방한계선은 무효임을 선포한다”며 여러 방법의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해군사령부가 이날 발표한 ‘통항 질서’는 ‘미국관할권’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해보다 오히려 위협의 강도는 낮아졌다. 이로 인해 북한측이 서해 관할권이 남측에 있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인정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의 이번 선언은 또 지난해 9월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던 북한이 ‘이 지역을 관리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대내용의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북한은 이번 ‘통항 질서’ 선포를 미국과의 협상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곳곳에서 내비쳤다. 미군을 상대방으로 한정하고 있는 북한이 북-미 고위급회담을 위한 준비회담 종료 직후 이 같은 선언을 했다는 점에서 미국측의 ‘성의’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뉴욕 준비회담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한 외무성에 대한 북한 군부의 불만이 이 같은 반응으로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함께 총선을 앞둔 남한사회의 혼란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해군사령부의 발표가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어 이런 시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인 도발은 남북경협을 통해 얻고 있는 경제적인 이익이나 상승분위기를 타고 있는 북한의 대외관계개선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