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양의 봄]55년만의 첫대좌 의미-과제

  • 입력 2000년 4월 10일 19시 44분


드디어 지구상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 봄은 찾아오는가.

그 동기와 과정이 어떠했든 분단 반세기여 만에 이루어지는 남북정상들의 첫 대좌는 한국사상 최대의 불행으로 기록될 ‘남북분단’에 ‘화해와 신뢰’의 바람을 불어넣는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은 과거 정치적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접근과 달리 남북경제협력 문제와 이산가족문제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정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실효성 있게 한반도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더욱이 분단을 고착시킨 한국전쟁 발발 50년이 되는 해 ‘6월’에 남북이 서로 협력과 화해를 논의하는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상징성이 크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씻고 동족애를 회복하는 첫걸음의 의미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정상회담의 성과물로 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합의했던 분야별 남북공동위원회를 가동하게 된다면 남북간에는 명실공히 교류협력을 통한 본격적인 화해의 시대가 개막될 것이다.

또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남북의 통일논의가 보다 실질화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물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임기 중 통일보다는 남북화해와 교류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통일논의는 다소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남북간 통일논의의 환경에 결정적 변화가 올 가능성은 크다.

정상회담이 열리면 남북은 우선 김대통령이 ‘베를린선언’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의 열악한 전력,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시설(SOC) 지원과 농업복구 등 경협을 우선적으로 본격화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통한 한반도의 기류변화가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에 미칠 파장은 실로 가늠키 힘들다. 수교회담을 재개함으로써 본격적인 관계개선 단계에 접어든 북-일 관계와 고위급회담 개최를 앞두고 있는 북-미 관계에도 남북정상회담이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미일간의 굳은 공조 속에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일 3국이 함께 북한과 동북아외교의 새로운 시대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다.

특히 북한이 1월4일 이탈리아와의 수교에 이어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비동맹정상회의 참석 등 대외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94년 7월 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 후 정상적인 국가기능을 못해왔던 북한이 남북정상회담과 대외관계 개선 등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상회담 개최가 지니는 의미의 요체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체가 남북 당사자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효과다. 북한이 핵문제와 미사일문제 등 대량살상무기의 개발로 받게 된 국제사회의 ‘문제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나타내는 동시에 한반도 평화공존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북관계는 정상회담만으로 풀어나가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사연이 얽히고설킨 것도 사실이다. 북한측이 정상회담을 북한의 이미지 개선과 경제회복에만 활용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뒷짐을 지고 물러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측이 그동안 접촉해온 국제사회 인사들이 “남북대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라”고 권고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남북대화에 단순한 ‘우선 순위’를 두었을 우려도 있다. 그러나 그같은 곁가지 우려들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가 저상(沮喪)될 수는 없다.

정부도 이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이 1회용으로 끝나지 않고 정례화될 수 있도록 모든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정상회담에 이어 열릴 남북적십자회담과 실무급 당국간 접촉을 통해 모처럼 조성된 기회를 성공적으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기존의 반목과 대립을 대화와 협력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일단 정상간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새 천년 남북환경에 획기적 영향을 미치는 ‘빅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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