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13일 여러차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16대 총선 투표 마감 직후 TV방송들이 출구조사 등을 토대로 발표한 예상의석에서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비해 최고 17석이나 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결국 제1당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만약 출구조사대로 제1당을 놓쳤다면 엄청난 안팎의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컸던 이총재로서는 일단 한숨을 돌린 셈이다.
그러나 수도권의 부진으로 당내에서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은 남아 있는 상태다. 이총재의 공천에 반발했던 비주류 인사들은 수도권 공천잘못으로 부진을 자초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총재는 공천파동 때 약속한 대로 조기전당대회를 통해 당내 반발을 정면돌파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한나라당이 영남에서는 선전했지만 수도권에서 고전하는 바람에 당의 주축세력이 영남으로 변한 것은 이총재에게 부담이다. 영남 석권이 이총재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반DJ’정서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이는 향후 대선가도에서 ‘영남후보론’이 대두한다면 이총재가 영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또 정국주도권 장악 여부도 이총재가 풀어야 할 과제다. 1당에서 밀린 민주당은 소수당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총재는 또 민주당의 정치권 새판짜기를 차단하면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측은 우선 총선에서의 금권 관권선거에 대한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면서 정부 여당을 몰아붙인다는 복안이다. 이총재 측근들은 당내 비주류의 도전이 미풍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권탈환 행보를 가속화해 나갈 태세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이인제선대위장, 충청권 약진세로 위안삼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선대위원장은 13일 밤 방송사 출구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실제 개표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밀리자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나마 자신이 사력을 다해 지원했던 충청권의 민주당 후보들이 약진세가 두드러진 것을 위안으로 삼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측근들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접전을 벌이고 충청권에서 민주당이 약진함으로써 이위원장이 JP로부터 충청권의 ‘맹주’자리를 이어받고 차기 대권고지에도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제1당 희망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이위원장은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이 반영될 것”이라며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에 앞서 그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밥을 두그릇 가까이 비우면서 “선거막판에 강행군하느라 저녁을 못먹고 밤늦게 집에서 라면으로 때웠다”며 여유를 보였다. 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얘기가 나오자 그는 곧바로 “오랫동안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견지해온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뒷돈을 받고 그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이라며 “그래서야 어떻게 김위원장을 대적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총재에 대한 이위원장의 견제심리가 어느 정도 강한지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그는 또 자민련측이 선거기간 중 자신의 아버지를 색깔론으로 비난하는 등 헐뜯기로 일관한 것에 대해서도 매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밤늦게까지 중앙당 상황실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보는 이위원장에 대해 당내에서는 “이번 선거결과가 이위원장의 향후 위상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
▼김종필총재, 이런 수모 처음 받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는 이날 아침 투표를 마친 뒤 낮 동안 서울시내 모처에서 머물다 저녁에야 청구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외부인의 면담을 일절 거절한 채 가족들만 JP 옆을 지켰다.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한 것이라고 측근들은 설명했으나 선거 부진에 마음이 상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지배적이었다.
JP는 이날 밤에도 끝내 중앙당사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다. 한 측근은 “아무리 파란 많은 정치역정을 겪은 JP지만 어쩌면 40년 정치인생에서 최악의 날로 기록될 충격에서 벗어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15대 총선 때의 50석(자민련)과 13대 때의 35석(신민주공화당)에 턱없이 못미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정치적 터전이라고 ‘그토록 믿었던’ 충청권에서 냉엄한 심판을 받은 것은 JP가 견디기 어려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정치규제에도 묶인 적이 있고 집권당에서 팽(烹)당하는 수모도 겪었지만 이번 같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측근들 사이에선 당장 극도로 위축될 JP의 향후 정치적 입지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물론 JP가 선거기간 내내 주장했던 ‘캐스팅보트’ 역할이 일정 정도 유효한 측면이 있긴 하겠지만 교섭단체 구성조차 불투명한 형편에선 당장 당내 의원들의 동요를 막는 데 치중해야 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측근은 JP에게 운신의 폭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3당 합당 후 14대 총선 때 신민주공화당 출신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5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JP는 ‘부도옹(不倒翁)’의 면모를 보여 오늘에 이르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