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을 거치면서 박부총재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당 운영방식에 대해 ‘1인 보스에 의한 사당(私黨)화’로 비판하는 선봉장역을 자임한 것.
총재단회의와 당무회의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본 당직자들은 “박부총재가 그토록 매섭게 이총재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
총선 전까지만 해도 이총재와 선을 그으려는 비주류 중진들에게 “당의 단합이 급선무”라며 이총재 체제에 힘을 보탰던 모습과는 크게 달라졌다.
박부총재는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이 정말 좋아서 표를 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안다면 결코 반사이익에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부총재 경선에 나서겠다면서도 당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내세웠다.
박부총재는 부총재 경선이 지역별 ‘나눠먹기’식으로 변질되는 데에는 강하게 반발한다.
그는 대구지역 위원장들이 “왜 우리 지역에서는 (부총재)후보를 단일화하지 않느냐”고 말할 때도 “경선의 의미를 훼손하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그가 총재 경선에 나선 김덕룡(金德龍)부총재와 연대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당내 민주화라는 정치적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다. 어려움 속에서도 ‘이회창대세론’의 격랑을 헤쳐나갈 ‘동인(動因)’으로 박부총재는 자신이 그동안 당을 위해 헌신해온 노력과 높은 대중적 지지도를 꼽는다.
이총재와 각을 세운 박부총재의 행보는 고 박대통령의 후광을 딛고 홀로서기를 위한 수순을 밟을 것 같다. 이총재가 부정적 의견을 보이는데도 “기회가 된다면 남북정상회담에 당 대표로 참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 것도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
결국 그 지향점은 ‘차기’와도 관련이 없지 않아 보인다. 박부총재 주변에서는 ‘한국의 대처(전 영국총리)론’도 흘러나온다.
“아버님 어깨너머로 정치를 배워왔다. 국회의원 배지를 몇 번 더 달려고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리를 목표로 하지는 않겠지만 나라를 위해 더 큰 중책이 맡겨지면 해낼 것”이라는 게 박부총재의 얘기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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