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비용 현실화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한국의 정치현실을 감안해 자원봉사자에게도 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쓰임새를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현행 법정 제한액이 적지 않을 뿐더러 선거비용의 절반을 정부가 보조해 막대한 돈이 들고 있는 만큼 군
중동원 등 잘못된 정치행태부터 바꿔야 한다"고 반박한다.》
[찬성]
16대 국회가 개원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새로 선출된 국회의원의 신뢰성이 의혹을 받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들이 선거비용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면서 축소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불신을 받는 것이다. 16대 국회의원 후보들이 신고한 금액은 평균 6361만원으로 법정선거비용 한도액 평균인 1억1600만원의 51%에 그쳤다.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30억원을 쓰면 당선이고 20억원을 사용하면 낙선한다는 뜻의 '30당 20락'이란 말을 많이 들었던 국민으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이 느끼는 '체감 선거비용'과 후보자들이 신고한 '실제 선거비용'의 차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실제 선거에서 많은 돈을 사용해놓고 후보들이 축소 신고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이 부분은 선관위가 실사를 통해 밝혀낼 부분이다.
▲체감 비용은 '30당 20락'▲
나는 현행 선거법상의 비현실적인 선거비용 규정과 선거비용 제한이 국민의 '체감 선거비용'과 '실제 선거비용' 사이의 괴리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고 본다.
만약 후보자들이 축소 신고했다면 그 도덕성과 법적인 책임문제를 일단 제쳐두고, 그 역시 상당부분 비현실적인 선거비용 책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부 기자로 있다 선거일 50여일을 앞두고 총선에 뛰어든 정치초년생이다. 실제 선거운동을 하면서 현행 선거비용 규정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선거비용 규정과 관련된 현행 선거법에서는 선거비용의 범위를 터무니없이 좁게 규정하고 있다.
지구당 개편대회를 위해 장소 임차료와 당원용 홍보책자 제작비, 다과비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어림잡아 수백만원이다. 그러나 지구당 개편대회는 일상적인 정당활동으로 간주돼 선관위에 신고해야 하는 선거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민의 눈에는 선거운동을 위한 활동이기 때문에 당연히 선거비용으로 비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법정 선거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하는 후원회 행사도 선거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더욱이 선거등록일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현역의원들의 의정보고회에 드는 비용 역시 법정 선거비용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 무제한적으로 할 수 있는 의정보고회에서 의정보고서 인쇄비와 다과회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른다.
▲규정대로 하면 선거 못처러▲
후보출마를 위해 선관위에 내는 기탁금 2000만원도 선거비용에 들지 않는다. 일반인들이 선거비용에 당연히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돈 중 실제 법정 선거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금액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억대에 이른다.
선거운동원 수와 일당 지급을 지나치게 규제한 것도 또 다른 탈법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현행법상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등록된 선거사무원과 지방의원, 유급당원 5명, 후보자의 직계존비속 등이다. 이들만이 선거기간에 어깨띠를 두르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보통 유급 선거운동원으로 불리는 선거사무원은 동별로 3명씩만 둘 수 있다.
유급 선거운동원 3명으로 한 동의 선거운동을 책임지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모자라는 선거운동원은 자원봉사자로 채울 수밖에 없다.
자원봉사자에게는 돈을 일절 줄 수 없다. 자원봉사자에게는 선거사무원에 지급되는 수당 식비 등 어느 하나도 지급할 수 없다. 자원봉사자에게 밥이라도 사줄 것 같으면 바로 선거법 위반이다.
▲제한액 높이고 쓰임새 밝혀야▲
우리 정치현실상 자기 돈으로 밥 사먹으면서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순수한 자원봉사자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자원봉사자에게 밥값을 못 주도록 하려면 최소한 법정 선거운동원을 몇명 더 늘리도록 하거나 자원봉사자 중에서 일부에 한해 밥값 정도는 줄 수 있는 '부분 수당지급 자원봉사자'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법정 선거비용을 적게 규정해 놓는다고 실제 선거에서 돈이 적게 드는 것은 아니다. 미국처럼 선거비용 한도액을 아예 없앨 수는 없겠지만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비현실적인 선거비용 규정은 실제 선거에서 돈을 적게 쓰도록 하는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탈법과 축소신고만을 초래할 뿐이다. 선거비용을 현실화하되 그 쓰임새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김성호<서울 강서을 국회의원>
[반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6대 총선 후보자 1037명이 신고한 1인당 평균 선거비용은 6361만원이고 지역구 당선자 227명의 평균 선거비용은 8775만원이라고 한다.
이번 선거의 법정비용 한도액이 평균 1억2600만원이었는데 대부분의 후보자가 그것의 절반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는 것이고 당선자들조차도 70% 정도만 썼다는 말이 된다.
선거 과정에서 '20락 30당'식의 말을 들어온 국민에게 이러한 수치는 전혀 현실감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후보자들의 선거비용 신고가 유권자들의 체감 선거비용과 너무 동떨어진다는 점을 인정하고 강도 높은 실사를 벌여 허위신고가 드러나면 8월까지 검찰 고발 및 수사의뢰 등 조치를 취할 것임을 공언했다.
▲법정한도액 적지않아▲
이에 대해 정치인들은 국회의원 선거법 자체가 도무지 지킬 수 없게 만들어졌다고 항변하면서 선거비용을 현실화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개선할 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비용 현실화 문제는 기본적으로 선거공영제의 원칙과 어긋나지 않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정치인들은 우리의 법정선거비용 한도액이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비용 현실화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막대한 선거비용을 줄이려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함을 상기시키고 싶다.
정부는 선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고에서 보전해주는 선거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15대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총 84억5600만원을 국고로부터 보전 받았으며 이번에 나온 후보들은 213억원 정도를 보전 받을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다.
▲비용 절반 세금으로 보전▲
금액이 이렇게 증가한 것은 지난 2월 선거법 개정에 따라 이번 총선부터 선거운동 기간 중 후보의 선거사무장, 회계 책임자, 선거사무원 수당과 TV 및 라디오 방송연설비용,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비용, 대담용 자동차 및 확성장치 비용까지도 국가가 보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후보자들은 유효투표 총수의 20% 이상을 득표하기만 하면 개인당 평균 5686만9000원을 보전 받게 되는데 이것은 법정선거비용의 45%에 이르는 수준이다.
국가가 이처럼 국민이 낸 세금으로 후보들의 법정선거비용의 절반 가량을 보전해주는 것은 돈 덜 쓰는 선거를 정착시키기 위함이다.
그런데도 후보자들이 선거비용을 올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시행하고 있는 선거공영제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후보자들은 비용 현실화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선거비용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없는지 부터 고민해야 한다.
실제 선거비용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조직관리비 명목으로 지출되는 선거운동원들에 대한 인건비로 알려져 있다.
▲일당동원등 낡은 관행 고쳐야▲
경기도의 민주당 후보측 실무자가 "당선권에 진입한 후보는 보통 15억∼20억원을 썼는데 대부분이 조직가동비였다"고 말한 신문 보도도 있었다.
후보자들은 바로 이런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으면서 동책 통책 반책을 두어야 하고 그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 않은가? 유세나 집회가 있을 때마다 일당을 주고 사람들을 동원해야 하는 현실 역시 비참하지 않은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이제 진공관 시대의 정치행태일랑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현행 선거비 산출 방식이 모두 좋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개선의 여지가 있다. 특히 법정 선거일 이전에 이루어지는 사실상의 선거행위가 전혀 선거비용으로 인정되지 않는 문제점은 고쳐야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정보고활동 비용과 후보자 선출대회 비용, 선거사무소 설치 및 유지비용 등은 선거비용에 포함되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합해서 선거비용을 산출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용을 산입(算入)한다는 조건으로 선거비용이 약간 현실화하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절대 선거공영제의 원칙과 취지에 어긋나는 수준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일영<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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